노무현 재단
유시민 정리
2009년 5월 23일 새벽, 그 새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터져 나온 속보. 나는 눈을 끔벅이며 일어났다. 옆지기를 깨웠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속보는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무현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다. 철학과 사상이 전무한, 턱없이 부족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무지와 탐욕의 집단이 내뿜는 광기에 의해 그는 타살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은 자신의 사고와 언어를 가지고 인간 노무현의 세계를 그릴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다. 노무현은 사악한 집단에 의해 마지막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린 것이다.
그의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 재단에서 책이 나왔다. 나는 며칠 전 시내 서점에서 그 책을 샀다.
노무현은 이 땅에 어떤 꿈을 심으려고 했나?
그의 좌충우돌을 보고 싶었다.
그의 공과 과를 보고 싶었다.
그의 실패를 보고 싶었다.
노무현은 한마디로 이상주의자였다.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반칙이 없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던진 사람이었다.
1. 권위주의 청산
2. 권력기관 중립
3. 지역구도 타파
4. 반칙이 없는 사회
5. 불균형의 해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퇴임하는 그날까지 권위주의의 딱딱한 갑옷을 입지 않았다. 권위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경계와 격식을 허물었다. 자기 자신에게는 냉혹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 경계를 허물었다. 국민들은 이웃 사람을 보듯 편했다. 털털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그가 놓아버린 국가의 권력기관에 의해 포위당했고, 그리고 존재가 찢겨져 나갔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가난하게 살았지만 비굴하지는 않았다. 자라면서 원칙이 무너지고 반칙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그의 정신은 한 방향으로 굳어가기 시작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아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싸워 나가리
어머니 해밝은 웃음의 그날을 위해
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 몇 안 되는 싸움꾼이었다. 그는 왜 싸웠을까? 투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패배를 알면서 뛰어 들었다. 패배와 절망이 기다렸지만 그는 그때마다 좌절을 딛고 일어나 우군이 없는 쓸쓸한 전쟁터로 걸어가곤 했다.
이데아를 위해.
꿈을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숱한 패배와 좌절 끝에 그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은 잠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적들. 재임기간은 물론이고 퇴임을 하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평범한 시민의 신분으로 돌아온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때까지 계속 공격을 한 그들은 이성을 잃은 하이에나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보수와 지식인 집단, 그리고 조중동이 그들이다.
그들은 대통령을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그들은 대통령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도 괜찮은 집단인가? 그들은 대통령을 공격해도 괜찮은 도덕과 정의로 무장된 심판관인가? 아니면 그들은 진정 대통령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이었나?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공격을 했을까?
1. 그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천국을 찾고 싶었다.
2. 그들은 듣보잡의 올곧은 대통령이 그냥 미웠다.
3.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말할 수 없이 켕기는 집단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4. 그들은 해방이 되면서 청산이 되었어야 할 친일파의 후손과 그 이웃이었다.
노무현의 공과 과를 바라보면서 제일 가슴 아팠던 부분은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 씨를 주미대사로 내정한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크게 실망했다. 홍석현은 누구인가? 친일파의 후손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친 안기부의 X파일에 등장한 인물이 아닌가.
저건 아닌데!
진짜 아닌데!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 노무현이가 쿠바를 해방시킨 체 게바라가 되어주길 바랐다. 두 사람의 사상의 토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아니면 미국의 입김을 거부한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추락한 브라질을 구한 룰라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의 노무현은 두 가지를 잡고 말았다. 시장과 서민을.
한미 FTA 협상
부동산 정책
문제는 선택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잡을 수는 없다.
노무현의 실수는 두 가지를 잡았다.
그러나 나는 인간 노무현을 아직도 좋아한다. 첫째, 그의 시골풍의 털털함이 좋았다. 둘째, 그의 순수가 좋았다. 셋째, 그의 때 묻지 않은 인간미가 좋았다. 넷째, 강한 자들에게는 강했고, 약한 자들에게는 무릎까지 낮출 줄 아는 그의 품격 높은 인간됨이 좋았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이명박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훈훈한 정을 가진 노무현이가 좋았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공과 과를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이다. 이명박과 노무현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은 한 사람은 물질주의이고, 한 사람은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 꾼 노무현이 건설하고 싶었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뒷이야기-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이명박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마치 신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된 자와 난 자의 차이점은 내일을 그리는 자와, 오늘 하루만 그리는 자다. 분명한 사실은 그도 이제 2년 몇 개월 후면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물러나면 고향인 포항시 흥해읍으로 귀향을 할까. 아니, 물러나면 온존하게 숨을 쉴 수 있을까?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습니다.’ 두 번 그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복수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 중에 가장 가혹한 벌은 무관심이다. 그는 그런 그릇밖에 안 된다. 인간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도 지금 생각하니 운명이다. 2010520도노강카페에서.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함 사태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 (0) | 2010.05.30 |
---|---|
천안함과 북풍 그리고 미스터리 (0) | 2010.05.23 |
변방 그리고 듣보잡 (0) | 2010.05.11 |
빈곤의 종말 (0) | 2010.05.04 |
슬픈 대한민국 (0) | 2010.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