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걷는다
25일 목요일 오후, 나는 가방을 멘 채 2호선에 몸을 실었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는 쌀쌀했다. 오후가 되면 덥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다.
역삼역에서 내린 나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점퍼가 더위를 부르고 있었다. 입은 채로 특허청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갔다. 민원실 직원과의 상담 끝에 만난 변리사. 짧은 만남 끝에 그는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로 가시오
2호선을 다시 탄 나는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시청에서 내렸다. 잠깐 착각을 한 것이었다. 수도 없이 탄 2호선이었다. 그대로 가다 중림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을 하면 되는데 어쩌자고 시청역에서 내리나.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열차는 떠나고 없었다. 5호선을 갈아타고 내린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청사와 미 대사관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갔다. 청사는 비어 있었다.
와룡동으로 가십시오
와룡동? 어디더라? 성균관대학교 근처에 있는 과학전시관이라고 했다. 아! 어느 해 인체를 본 과학전시관. 나는 땀을 흘리며 한국일보로 해서 인사동 쪽으로 내뺐다. 한국일보는 어디로 도망을 갔나? 오줌이 나올 것 같은데 어디 들어갈 집이 없다. 내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인사동 입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4시50분. 가도 만나지 못할 시간이다. 목이 탔다.
방황
특허청으로 간 것이 잘못이었고, 알지도 못하면서 태연하게 문화체육관광부로 가라고 한 변리사가 두 번째 잘못이었다. 오후 내내 땀에 절어 지냈다. 목이 탔고, 몸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종로의 그곳
그곳에 가면 2천 원짜리 밥을 파는 집이 있다. 막걸리도 2천 원이다. 중국 연변에서 온 아주머니가 보였다. 10년은 되지 싶다. 밥, 드려요? 막걸리 한 병 주소. 작은 그릇에 담긴 시래기 국. 따라 꿀떡꿀떡 마셨다. 시원했다. 돈 주고 사먹는 술이 맛이 있다.
어제 금요일, 나는 4호선을 타고 혜화로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성대로 가는 골목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웬 70대 아주머니가 끌차를 끌고 가면서 지나가는 청년들에게 성대 가는 길을 물었다. 가르쳐 주었다. 20미터도 안 가 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성대 가는 길을 물었다. 가르쳐 주었다. 사거리 횡당보도에서 또 물을 것 같아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성대 가는 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가르쳐 주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모르면 묻고 또 물으세요.
나는 동네구장이다
언제인가, 충무로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선 지하철을 보고 삼성병원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옆에 사람이 뜸도 안 들이고 말했다.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을지로 3가에서 나는 그 아주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삼성병원은 두 군데다. 강북과 강남.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발견했다. 나는 서서 가는데 그 아주머니는 재주도 좋지, 어느새 자리 하나를 차고 앉아 있었다. 저런 사람들이 대부분 잘 산다. 운도 좋고. 노력을 아무리 많이 해도 운이 안 따라주는 사람이 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서서 가는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타자마자 자기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그 자리를 쉽게 꿰차고 앉는 사람이 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서서 버티고 있는데. 그런 자들에게 행운은 늘 따라다닌다.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가스발사기를 소유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 자리를 향해 바람처럼 접근을 하는 젊은이들, 노인이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을 하는 철면피들에게는 방귀보다 10배 정도 더 독한 가스를 발사해 자리를 박차고 도망을 가게 하는 가스발사기를 소지하도록 해야 한다. 가정이, 개인이 못하면 국가가 이제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라도 달아난 인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아주머니, 강남 일원에 있는 삼성병원입니까? 네. 내려서 반대편 지하철을 타십시오. 아, 그래요? 네. 안국에서 내렸다. 까닭 잘못했으면 일산까지 갈 뻔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동네구장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지나쳐도 괜찮은데 나는 왜 지나쳐가지 못할까?
당신 몸속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요
옆지기의 진단이다. 나는 과학전시관 뒤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로 갔다. 여직원이 나를 맞았다. 내가 설명을 하자 그녀가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를 하더니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한국저작권위원회로 가라고 했다.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인쇄물을 뽑아 나에게 주었다. 대청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다
변리사가 사람 죽이네. 다시 4호선과 3호선으로 갈아타고 대청으로 갔다. 그쪽 동네는 훤하다. 그런데 잠깐 안테나가 다시 외출을 하는 바람에 대치에서 내렸다. 역이 좀 달랐다. 왔다갔다 방황하다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대 자만 보고 내린 것이었다. 대청역. 오랜만에 보는 데도 눈에 익었다. 뽀빠이 이상용 씨를 자주 본 것도 그 동네다.
우체국 6층. 상담실의 직원을 만나 설명을 했고, 그녀는 내가 준 인쇄물을 보았다. 그 때 자신도 영어 때문에 왔다는 사내가 가자미눈으로 내가 내민 인쇄물을 슬쩍 훔쳐보는 것이었다. 지적재산권 때문에 온 사람의 저작물을 훔쳐보고 있는 또 다른 저작자. 내가 말했다.
여보, 당신과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 뭡니까?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내 저작물을 등록하러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함부로 남의 저작물을 그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이 세상은 도둑들 소굴이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을 놓고 벌이는 싸움을 보라. 내가 골을 싸맨 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든 내 특허를 이노마가 카피를 했습니다. 판사님, 카피 안했습니다. 아닙니다. 진짭니다. 하긴 이 글을 장하준 교수가 보면 빙그레 미소를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특허권을 인정해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이유인즉슨, 이 세상의 지적, 물적, 기술적 재산권은 어느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이룬 지적재산권이 아닌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두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누누이 강조를 했다. 그렇다면 내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태어나 국어를 익히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읽어온 그 지식과, 불가능한 세계를 공상 속에서 만들어 낸 허구의 그 세계가 바로 상상력이 아닌가.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상담 그 끝
잠시 후 만난 법률 담당자. 내가 인쇄물을 꺼내 설명을 했다. 하, 정말 그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이런 저작물은 특허처럼 법으로 보호는 못 받습니다. 유사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작물을 등록하는 것은, 후에 법적인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 봐라! 원조는 나잖아! 라는 주장은 할 수 있습니다.
등록을 하는데 4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때부터 내 저작물이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이게 인쇄물이 아니고 작곡이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강남 스타일을 떠올리다 금방 생각을 고쳐먹는다. 가능성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성공과 실패는 50대 50이다
배가 고팠다. 식당에 들어가 함부로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짜장면을 먹어본지 까마득하다. 설렁탕과 갈비탕도.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 몸은 어느새 지각변동을 끝마친 상태다. 의식도 마찬가지다.
이제 고기 냄새를 맡으면 누린내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오곤 한다. 우리 동네에 들어온 무한리필 육해공. 9000원만 주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다. 저녁마다 손님들로 미어터진다. 산책을 하기 위해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맡게 되는 고기 냄새. 역하다. 미국산 쇠고기 냄새다. 미국놈은 똥도 굵고 냄새도 독하다. 어린 시절, 한미연합작전 때 포항에 온 미국 군인들 몸에서 맡은 역한 누린내. 그 냄새가 자주 내 속을 뒤집어놓는다.
다시 그려보는 설계도
대청에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일 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린다. 사업계획서와 사업제안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두 가지다.
1. 시장성
2. 수익구조
인쇄물을 등록하고, 책을 등록하고, 그리고 영상물을 등록하면 끝이다. 그 전에 투자자와 동업자를 만나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출발을 하면 된다. 그 작업이 엄청 지난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늘이 내는 거부
왕회장은 조선소도 없고 배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이 맨몸으로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간다. 다국적 은행의 담당자를 만난 왕회장, 선박회사로부터 수주를 받은 그 계약서를 보여주며 한국말로 배 만들게 돈 좀 빌려주시오! 하고 손을 내민다. 돈의 흐름을 한눈에 꿰차고 있는 프로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는 있습니까? 그리고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은 있습니까?
왕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자, 보십시오,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이렇게 훌륭한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런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회장은 하늘이고 나는 땅이다
나는 내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낡은 트레킹화. 몇 년을 신었는지 모른다. 작년에 광고를 보고 산 트레킹화. 그 신발을 신고 당당하게 산에 갔다 죽는 줄 알았다. 바닥이 생고무라 물기가 있는 바위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쫄딱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칠 뻔했다. 칸투 뭐라고 하는 신발이다. 가짜다. 내가 마르고 닳도록 신고 다니는 신발은 동쪽의 무슨 페이스다. 흡착력이 좋아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도전, 열정, 그리고 fun
도전은 무섭다. 아무나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하는 것은 한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 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사기꾼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을 다 말아먹고 싶다. 열정 또한 무섭다. 열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열정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정말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
지난 몇 년, 그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나는 자주자주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현재는 보이지 않고 미래와 가능성만 보였다.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는 수많은 별이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 프로젝트는 나를 오늘까지 이끌고 온 내 삶의 진정한 동력이다.
뒷이야기-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다 밖을 내다본다. 그쳐라. 계속 내리면 내 구멍 난 신발 속으로 빗물이 들어온다. 그만 내려라.21121027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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