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나
하나가 막 끝났을 때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동영상을 제작하는 공장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중에 세 군데 정도를 골라 적었다. 그리고 한 군데에 이메일을 보냈다. 답이 금방 도착했다. 하나에 1천6백만 원 정도 듭니다. 12개면 대충 9천 6백이다. 6을 곱하면 6억 정도가 된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내가 어쩌자고 어려운 프로그램에 손을 대어 이 고생인가.
어제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하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공장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한 공장을 지목해 주소를 적었다. 가자.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구로디지털역에 내려 2번 출구로 해 미로 같은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14층. 여자 담당자를 만나 상담에 들어갔다. 내가 놀란 것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공장에 근무를 하는 기술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을 캐릭터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1천 6백만 원짜리가 여기서는 1억 6천억이었다. 하! 목구멍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거의 10배였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담당자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플래시북 쪽으로 가보세요.
플래시북요?
네.
플래시?
플래시가 뭔가? 카메라 그 플래시를 말하나? 14층을 빠져 나와 다시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입이 탔다. 장어, 곱창, 낙지볶음이 갈 길이 먼 나를 유혹했다. 소주라도 한 잔 들이키면 속이 가라앉으려나.
천근만근을 이끌고 집에 오니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입맛을 잃어버렸는지 밥이 소태였다. 내일은 플래시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하니 여기도 공장들이 줄을 서 있다. 한 곳을 적었다. 내일은 연건동이다.
겨울비
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 주민동록등본을 하나 떼어 가장 속에 넣었다. 길이 보통 미끄러운 게 아니다. 첫 추위에 떨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떤다는 그 속설에 놀라 발열 내의를 입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더워서 땀이 줄줄 흘려 내린다.
혜화에 내려 대충 눈짐작으로 길을 걷는다. 이번에는 8층이다. 현관에 들어가니 터널 속이다. 오줌이 마려웠다. 그러나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에는 몸으로 땀이 배출되는 게 아니라 소변으로 빠져 나온다. 이쪽저쪽 눈길을 주자 현관을 지키는 경비가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그냥 올라가자.
벨을 누르자 사내 하나가 문을 열면서 나를 경계한다. 오피스텔이다. 직원은 보이지 않고 사내 혼자뿐이다.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사내가
하, 지금 너무 바빠 시간이 없습니다.
하, 그렇습니까.
네.
일단 신발을 벗고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는 법. 반 강제로 신발을 벗고 올라간다. 상담실이라고 의자 두 개가 놓인 테이블에 앉아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꺼낸다. 이래 저래 왔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사내가 간단명료하게 답을 한다.
잘못 찾아왔다.
네?
여기는 플래시북만 작업한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애니메이션 프리랜서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요?
왜냐하면 그 쪽이 두 가지를 다 소화시키니까.
하.
우리는 책만 전적으로 만든다.
분위기에 눌린 내 오줌
올라올 때 나오려고 고개를 내민 오줌이 분위기에 얼어버렸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주인과 하나가 되려면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알아야 된다. 뚝! 하면, 나오다가도 동작 그만 해야 한다.
다시 걷는다
걷는다. 비인지 눈인지 하늘에서 쏟아진다. 겨울에 내리는 진눈깨비는 싫다.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것 같다. 어느 학습지 회장 나으리는 다 스러져 가는 옥탑방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나 신산했을까? 옥탑방 너머의 저 세상은 오색 무지갯빛인데, 나는?!
다시 플래시북에서 가르쳐 준 대로 애니메이션 프리랜서 쪽을 검색한다. 여기 있으니 나를 좀 찾아주세요 하는 쪽보다 프리랜서를 찾는 공장들이 더 많았다. 그래도 어둠 속을 파고 들어가면 한 사람 정도 나오겠지. 나왔다.
여보시오, 나으리. 이러저러해서 이메일을 보냅니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면 전이 얼마면 되겠습니까? 출발할 때 내가 적어 낸 금액이 너무 큰 모양이었다. 30억. 돈이 남아돌아가도 당신에게는 투자하지 않겠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 많은 돈을 투자한단 말인가. 하!
수정을 한 계획서
그래서 수정을 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결국 수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수정자본주의가 나온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믹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섞어 비빔밥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다. 막말로 이건희 혼자 다 말아먹으면 얼마 안 가 대한민국은 망한다. 이건희가 3을 먹고 국민이 7를 먹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수정이 된 계획서를 이야기 했더니 옆지기가 그제야 반응을 보이면서 찬성을 한다. 그래요. 출발할 그렇게 시작해요. 당신, EBS 담당자를 만나보았지만 그곳도 동영상을 제작하지 않잖아요. 만화면 어때요. 내용이 중요하지. 맞다. 싸이가 어디서 대박이 났나? 바로 You Tuve이다.
선거열풍
세상은 지금 온통 대통령 선거에 들떠 있다. 후보들은 마지막 일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채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다. 아니다. 문재인 후보는 그래도 신사도를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박근혜 후보다. 철두철미하게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 입으로는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험담을 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통합과 원칙과 상식과 신뢰와 믿음과 미래를 내뱉고 있다.
하나도 내놓지 않으면서!
내 존재를 걸고 말한다. 다카키 마사오와 그 후예들, 그리고 십알단을 온몸으로 부정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21세기 균형 잡힌 동북아의 질서를 위해서, 나아가 세계 속의 한반도를 위해서 이번에 정권 교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썩은 저 무리들을 싹 잘라 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그래야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다.
이번에는 광명이다. 아마 이메일이 도착하면 다시 광명으로 나는 갈 것이다. 내 원적은 어디이며 내 현주소는 또 어디인가? 고단한 인생. 나는 거리 위의 나그네다.
뒷이야기-뜻을 자주 생각하고, 길을 자주 생각한다. 뜻을 세워 그 뜻을 펼치기 위해 길을 걷고 있지만 첩첩산중이다. 차라리 뜻이 없는 길이었으면. 길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는 걸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대, 그런 나를 아느뇨?20121214도노강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