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서 일어나다
지금 두고 있는 바둑이 패가 잘 안 보이면 잠시 일어나 화장실에라도 갔다 오라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면 그 현장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그래, 잠시 이곳 서울을 벗어나자.
화요일 오후 2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리는 포항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몇 년 만에 가는 고향인가? 3년이 넘은 것 같다. 그 곳 고향에는 어머님이 얼마 전에 막내 집에 내려가 계시고 올 4월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계신다. 아버님을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 이제야 가게 되었다.
영일대 풍경
포항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북부해수욕장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명칭이 바뀌어 있었고, 해수욕장 가장자리에 영일대라는 누각이 하나 서 있었다. 영일대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아파트 풍경. 저곳 어딘가에 지아가 살고 있었다. 여름에 내려와 청소년 수련원에 운동을 하러 가면 늘 만나곤 했던 지아. 몇 년 전부터 지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편의 해수욕장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생겼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높은 건물들 때문에 해수욕장의 모래들이 쓸려가는 해운대가 떠올랐고, 그리고 허허벌판에 건물들이 들어설 때마다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 조금씩 황폐화되어가는 그 사실을 떠올렸다. 개발이 다 좋은 건 아니다. 개발 때문에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이익을 쫓으면 우리 인간의 본성은 순수와 거리가 멀어진다.
목요일부터 포항은 추웠다. 하루 종일 바람이 불었고 비가 내렸다. 세우를 맞으며 우리는 해수욕장 투어에 나섰다. 오전에는 영일대에서 수건을 바닷물에 적셔 어머니의 가려운 피부를 닦았고, 오후에는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 부근의 바닷물에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았다. 점심은 어디에 가서 해결을 하나? 문제는 휠체어였다. 냉면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2층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비가 내리는 해수욕장을 두 번, 세 번 오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어느 슈퍼에 어머님이 드실 누가바와 껌을 한 통 사기 위해 옆지기가 들어가자 노인네 두 분이 묻더란다. 딸이에요, 며느리에요? 며느리라고 하자 두 분이 놀라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란다. 효는 어려운 게 아니고 간단하다. 그런데 그 효를 우리는 지금 저버리고 있다. 요양원이 생기면서 우리 자식들은 불효자가 되어 가고 있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이 처져 있는 곳에 들어가니 첫 외출을 나온 해병 1사단의 병사와 부모가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저 신병은 혹시 선임들에게 구타를 당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도 군대에서 구타가 일어나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석태 같은 인간말자들이 있다. 폭력이 나쁜 것은 항상 폭력은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 대부분은 폭력 앞에만 서면 형편없이 나약해진다. 두세 사람만 힘을 합하면 인간말자 하나 정도는 충분히 제압을 할 수 있는데, 그 인간말자 앞에 당당하게 나서는 정의가 없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4박 5일 동안의 축제
4박 5일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무엇을 했나? 누님까지 내려온 포항 막내 집은 파티의 연속이었다. 밤만 되면 나는 생탁을 마셨다. 2년 전, 뇌졸중으로 영남대학교에 입원을 했던 그 후배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원상회복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고 했다. 의술과 약이 좋아서? 본인의 재활노력? 아니면 가족들의 헌신? 세 가지라고 했다. 털보는 부동산 일을 잠시 접은 채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후배는 접은 그 부동산공부에 매달리고 있었다. 왜 접었냐고 물으니 자신하고는 적성이 안 맞는다고 했다. 부동산은 사기 같은 게 좀 동원이 되고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나오지 말고 공부하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후배 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변두리에 있는 시장 입구의 낡은 다방이었다.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 후배가 나를 그곳으로 부른 것이었다. 그 놈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영일만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영일대를 놔두고, 이 망할 시장통에 나를 부르다니! 다방을 오르는 계단 입구에서 들어가나 그냥 돌아서나 망설였다. 옆지기는 돌아가자고 했다. 맹자의 맹모삼천지교도 모르나?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 털보는 만나고 가야지. 3천 원짜리 다방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 다른 사고의 그 간격.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아는 그 꼴이었다.
아버님을 찾아뵙다
포항을 떠나오기 전 날, 아침부터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때문에 어머님도 오늘은 밖에 나가시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아버님에게 다녀오자. 내가 고향에 온 목적이 아버님을 찾아뵙기 위해서가 아닌가. 옆지기도 가자고 했다. 전 날 저녁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너무 많이 걸은 옆지기는 몸이 좀 무겁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고 했다.
산소에 오르는데 장대비로 변해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옷과 신발은 빗물로 흥건했다. 공동묘지는 이제 나무들이 점령을 해 산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버님을 뿌려 드렸다고 했다. 아버님이 마지막에 가장 많이 드셨던 콜라 대신 사이다를 뿌리고는 다시 큰 절을 올렸다. 마음이 울컥하면서 뜨거워져 왔다. 93세. 남들은 호상이라고 했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조금 더 살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님,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고향의 명물
장대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신발 안은 물이 철벙철벙했다. 관향에는 세 가지가 유명하다. 국수, 모리국수, 그리고 고래 고기. 국수집에 갔다. 이미 찐빵과 단팥죽은 없고, 국수뿐이라고 했다. 2천 원짜리 국수는 세 젓가락 정도밖에 안 되었다. 먹으면 화가 나는 국수다. 그래서 배를 채우기 위해 찐빵과 단팥죽을 먹게 된다. 그게 한 세트다. 모리국수는 안 된다고 했다. 고기가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모리국수를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북어국 식당. 6, 25사변 때 함흥에서 내려와 북어국 장사를 한 그 집 북어국은 맛으로도 유명했다. 늘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그 날 먹은 북어국은 옛날의 그 맛이 아니었다. 스펀지를 씹는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이곳 또한 옛날의 도서관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청소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유아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으니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전부 학원으로 가고 도서관에는 안 온다고 했다.
옛날의 고향 도서관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선풍기뿐인 여름에도 쌀쌀한 겨울에도 도서관 안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 안에서 시낭송을 했고, 소설을 이야기 했고, 꿈을 이야기했고, 희망을 이야기했고, 그리고 연말에는 연극까지 했었다. 극작가가 나타났고, 연출자가 나타났고, 배우들이 나타났다. 학생들이 만든 그 연극은 너무 훌륭했다. 밤 11시까지 도서관 안은 학생들이 내뿜는 열기와 희망과 꿈이 넘쳐나곤 했었다. 그런 도서관이 지금은 꿈과 희망 대신 실력과 점수를 올리기 위해 또 다른 배움터인 학원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일대의 마지막 밤
영일대의 밤바다. 우리 두 사람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호성 시인의 시제목이 떠올랐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서울로 복귀를 하면 한 사람은 독일로,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잡기 위해 세상의 중심부로 자리이동을 한다.
다시 돌아와 건강하게 삽시다.
그래, 다 잊고 재미있게 보내고 오너라!
당신도 그 때까지 건강 꼭 지키세요?
응. 지킬게.
뒷이야기-어제 올라온 나는 광화문 광장에 갔다. 27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사람. 시나위의 신대철이 한 말, 바른 일을 하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합니까!?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수상하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정치권은 여도 야도 이성을 잃어버렸다. 정치는 실종이 되었고, 밥버러지들만 바글바글하다. 정의는 어디에 가서 찾아야 되고, 진실은 또 어디에 가서 물어야 하나? 청와대와 국회는 썩어 있다. 모든 게 개판 오 분 전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익이 아니고, 수출이 아니고, 개발이 아니고, 성장이 아니고,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힘을 보태야 한다! 힘을 모아서 이 세상의 적폐를 밀어내어야 한다! 2014811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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