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번역본이 도착하다

오주관 2017. 11. 9. 13:32



번역본, 드디어 나에게 오다


우리말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매야 보배라고 했다.

지난 5개월 줄 땀을 흘리며 매달린 프로그램.

외대로 갔다,

 다시 도시의 한복판에서 방황을 한참 하다 드디어

찾아간 곳,

이름하여 영어번역전문센터.

맡겼다.

그 번역본이 일주일 후 어제 나에게 왔다.

8장의 번역본.

5장짜리가 8장짜리가 되어 돌아왔다.

땅도 우리나라보다 넓고, 언어도 우리나라보다 길다.

어쨌든,

읽어보니 아뿔사, 였다.

옆지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완벽하지가 않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다


맞는 말이다.

번역작업은 정말 어렵다.

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번역이 가능하다.

이중 언어를 알아야 번역이 가능하다.

한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빌 클린턴과 엘 고어, 채식주의자가 되다

라는 그 소제목을 번역을 했는데,

Bill Clinton, Al Gore, and the vegan diet

앞이 캄캄했다.

이게 맞나?

빌 클린턴은 육류만 안 먹지 다른 것은 먹는다.

그는 비건이 아닌, 채식주의자다.

이 문장을 번역을 한 원어민은 아마 채식을 모를 것이다.

채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가장 상위층이 비건이다.

비건은 육류뿐만 아니라 유제품과 계란,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비싼 모피옷도 안 입는다.

오로지 통밀빵과 채소 그리고 과일과 물만 먹는다.

나도 비건이다.

이 문장이 맞느냐?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단어선택이 잘못 되었다.

차라리 become vegetarians라고 했으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옆지기가 교정을 보다


밤 11시에 집에 도착한 옆지기는

고구마 몇 개를 먹고는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옆지기는 원서를 해석하는데는 탁월하다.

단, 영작은 안 된다.

전체를 훑은 옆지기 왈,

완전히 틀린 문장은 아니다.

나름대로 수고를 했다.

문화의 차이가 작용했을 것이다.

당신이 지적을 한 빌 클린턴과 엘 고어, 채식주의자가 되다

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식이요법이라고 해도 완전하지 않고.

숫자도 전부 틀렸다.

12-17조라는 숫자를 1217조로 둔갑을 시키는 바람에

돈다발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었다.


오늘 아침 번역센터에 전화를 해 이래저래 고쳤다.

원어민과 잘 상의를 해 다시 고쳐주십시오.

나는 당부를 했다.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 해달라.

최선을 다해겠다고 다짐을 했다.


진실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우리 두 사람이다.

수학과 영어를 잘하는 옆지기.

어젯밤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신, 수고했다.

옆지기 왈,

당신이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목숨을 걸고 만들었잖아요.

그러니 번역을 아무렇게 할 수는 없지요.

번역이 당신을 돋보이게 하고,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생명인데, 

우리가 정신을 안 차릴 수가 없지요.

당신, 정말 수고했습니다.

당신도 수고했다.

번역비 몇 백 만 원을 아끼려고 10장이 넘는 걸

하루만에 5장으로,

그것도 주제를 다치지 않게 

줄이는 당신의 그 실력도 대단합니다!

머리에 권총을 대고,

 살래, 죽을래?

하는데,

안 고쳐지겠나?

궁즉통이다.


앞으로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하나?

이랴~

이랴~

이랴~

세 개의 산을 더 넘어야 된다.

어쨌든 힘을 내어, 

저 정상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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