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본, 드디어 나에게 오다
우리말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매야 보배라고 했다.
지난 5개월 줄 땀을 흘리며 매달린 프로그램.
외대로 갔다,
다시 도시의 한복판에서 방황을 한참 하다 드디어
찾아간 곳,
이름하여 영어번역전문센터.
맡겼다.
그 번역본이 일주일 후 어제 나에게 왔다.
8장의 번역본.
5장짜리가 8장짜리가 되어 돌아왔다.
땅도 우리나라보다 넓고, 언어도 우리나라보다 길다.
어쨌든,
읽어보니 아뿔사, 였다.
옆지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완벽하지가 않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다
맞는 말이다.
번역작업은 정말 어렵다.
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번역이 가능하다.
이중 언어를 알아야 번역이 가능하다.
한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빌 클린턴과 엘 고어, 채식주의자가 되다
라는 그 소제목을 번역을 했는데,
Bill Clinton, Al Gore, and the vegan diet
앞이 캄캄했다.
이게 맞나?
빌 클린턴은 육류만 안 먹지 다른 것은 먹는다.
그는 비건이 아닌, 채식주의자다.
이 문장을 번역을 한 원어민은 아마 채식을 모를 것이다.
채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가장 상위층이 비건이다.
비건은 육류뿐만 아니라 유제품과 계란,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비싼 모피옷도 안 입는다.
오로지 통밀빵과 채소 그리고 과일과 물만 먹는다.
나도 비건이다.
이 문장이 맞느냐?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단어선택이 잘못 되었다.
차라리 become vegetarians라고 했으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옆지기가 교정을 보다
밤 11시에 집에 도착한 옆지기는
고구마 몇 개를 먹고는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옆지기는 원서를 해석하는데는 탁월하다.
단, 영작은 안 된다.
전체를 훑은 옆지기 왈,
완전히 틀린 문장은 아니다.
나름대로 수고를 했다.
문화의 차이가 작용했을 것이다.
당신이 지적을 한 빌 클린턴과 엘 고어, 채식주의자가 되다
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식이요법이라고 해도 완전하지 않고.
숫자도 전부 틀렸다.
12-17조라는 숫자를 1217조로 둔갑을 시키는 바람에
돈다발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었다.
오늘 아침 번역센터에 전화를 해 이래저래 고쳤다.
원어민과 잘 상의를 해 다시 고쳐주십시오.
나는 당부를 했다.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 해달라.
최선을 다해겠다고 다짐을 했다.
진실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우리 두 사람이다.
수학과 영어를 잘하는 옆지기.
어젯밤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신, 수고했다.
옆지기 왈,
당신이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목숨을 걸고 만들었잖아요.
그러니 번역을 아무렇게 할 수는 없지요.
번역이 당신을 돋보이게 하고,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생명인데,
우리가 정신을 안 차릴 수가 없지요.
당신, 정말 수고했습니다.
당신도 수고했다.
번역비 몇 백 만 원을 아끼려고 10장이 넘는 걸
하루만에 5장으로,
그것도 주제를 다치지 않게
줄이는 당신의 그 실력도 대단합니다!
머리에 권총을 대고,
살래, 죽을래?
하는데,
안 고쳐지겠나?
궁즉통이다.
앞으로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하나?
이랴~
이랴~
이랴~
세 개의 산을 더 넘어야 된다.
어쨌든 힘을 내어,
저 정상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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