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
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해도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있으니
어려워마 두려워마
아무 것도 아니야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보는거야
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
당당히 니 꿈을 펼쳐 보여줘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있으니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있으니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있으니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 졌군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고 있어
친구, 분명히 해두고 싶은게 있어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을 얘기해 볼께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참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 다녔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후회라... 약간은 있었지
그렇지만 달리 보니,
굳이 끄집어내어야 할 정도로 많았던 건 아냐
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고, 한치의 어긋남 없이 끝까지 해냈지
난 계획된 길로만 따라가기도 했고,
조금 다른 샛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오기도 했어
그리고.그 보다 더 가치있었던 것은
난 항상 내 주관대로 살았다는 거야
그래 맞아, 자네도 잘 알겠지만,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을 겪는 도중, 의심이 생길 땐
전적으로 신용했다가도, 딱 잘라 말하기도 서슴치 않았어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난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던 거야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내 지나온 모든 걸 회상하니,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아뇨, 아니예요, 난 달라요.
난 내 방식대로 살았어요" 라고
사나이가 사는 이유가 뭐고, 가진 것이 과연 뭐겠어?
그 자신의 주체성을 지킬 수 없다면, 가진게 아무 것도 없는거지
비굴한 사람처럼 지껄이는 말이 아닌 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게
진정 남자 아니겠어?
지난 과거가 말해주고 있듯이 난 닥쳐온 고난을 피하지 않았고
항상 내 방식대로 해결했어
그래, 그건 내가 살아 온 길이었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이냐?
지난 내 삶을 돌이켜 보면, 한 번도, 단 한 번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았다. 나는 늘 당당했다. 엘가의 위풍당당처럼 당당하고, 묵묵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무기 삼아 이 세상과 싸우며 실천해왔다. 정직한 삶과 성실, 의지와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으로 내 삶의 밭을 가꾸어 왔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점심시간이 지나면 나는 늘 형과 함께 물에 적셔놓은 새끼줄을 울러메고 오어사 옆 호랑이가 산다는 황사골로 나뭇단(나무마지미)을 지러 가곤 했다. 2시간 정도 걸어 도착을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벌써 나뭇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합이 네 개.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내가 차례로 나무를 지고 일어서 길고 긴 행렬을 시작한다. 아마 20리는 넘었을 것이다. 까마득하다. 나뭇단을 메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초등학교 1학년인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이었다. 양 어깨에 전해져 오는 무게와 고통은 실로 컸다. 얼마 안 가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너무 멀기만 했다. 앞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앞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야야, 먼 길을 갈 때는 앞을 보지 말고, 항상 땅만 보고 걸어라.
순간, 내 머릿속에서 팍, 하고 빛 하나가 터져 나왔다.
탁, 하는 순간 돈오돈수를 맛 본 것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된 나는 공동묘지 산 위의 콩밭에 앉아 더위와 싸우며 호미로 콩밭의 풀을 메고 있었다. 산 아래 저 너머 병포리의 푸른 여름바다는 나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곤 했다. 동네 친구들은 전부 저 바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차가운 몸을 덥히기 위해 뜨거운 바위에 누워 오들오들 떨며 햇볕에 몸을 쬐고 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시베리아에 있고, 더운 사하라 사막에 있는 내 이마에서는 줄땀이 나고, 입술은 타는 갈증으로 쩍쩍 갈라져 오고, 콩밭에서 올라오고 있는 열기는 금방 나를 지치게 만들곤 했다. 그 때 내 앞에서 콩밭을 메고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일은 손이 하지, 눈이 하는 게 아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또 빛 하나가 팍, 하고 터져 나왔다. 그 말을 듣자 내 눈이 부끄러웠다. 이미 초등학교 때 세계문학을 독파한 나는 당연히 헤세와 데미안을 알고 있었다. 아, 데미안이 바로 나였구나! 그래, 나는, 나라는 알에서 두 번 태어났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땀을 한 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도 땀을 콩죽 같이 흘리며 살고 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노력만 하면 다 이룰 수 있다!
운명인가? 내 정신의 본적은 하늘이었고, 내 육체의 현주소는 길 위였다. 광야의 나는 고독했고, 외로웠다. 그 해 그 작은 암자. 너무 외로워 나는 산 정상을 향해 미친 듯이 기어 올라갔다. 산 정상에 선 나는 빛이 가물가물거리는 깜깜한 도시를 향해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 울부짖곤 했다.
이 보시오,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들려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그랬다, 지난 내 삶이. 하지만 후회는 없다. 홀수였지만, 나는 만족한다. 나는 이 세상을 읽었고, 그리고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럼 된 것이다.
뒷이야기-하루 세 끼는 내 몸에 대한 학대라고 했나? 하루 세 끼 먹는 내 밥은 이판사판의 사판보다 더 열악하다. 1식 3찬이 전부다. 식을 초월했고, 식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못 다스리는 게 하나 있다. 앎에 대한 갈증이다. 내가 진실로 갈망하는 것은 육즙이 훌륭한 쇠고기나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져 있는 삼겹살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을 읽고, 해석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카알 마르크스의 자본도 그래서 나에게는 노 땡큐고 시시하다. 내가 만약 자본을 쓴다면, 경제학자들도 잘 읽지 않는 따분한 5권의 자본을 한 권으로 압축을 시켜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읽을 수 있게 하겠다. 늘이는 게 아니고 압축이다. 2년 전, 100세에 돌아가신 대전의 큰 어머니가 어느 해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동서야, 저 조카가 스님이 되었으면 아마 큰 스님이 되었을 거다. 아마도. 내 사고의 근원은 하나, 이 세상을 읽고, 해석을 하고, 그리고 바꾸는 것이다. 2018111해발120고지.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 그리고 끝없는 도전 (0) | 2018.02.02 |
---|---|
토요일과 일요일 일기 (0) | 2018.01.22 |
며칠 전 유서를 쓰다 (0) | 2017.11.23 |
번역본이 도착하다 (0) | 2017.11.09 |
어제 대학로에 가다 (0) | 2017.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