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헛간
옛날 어린 시절의 우리 집에는 헛간이 하나 있었다. 집에서 내가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 헛간 속에는 짚단으로 만든 아지트가 있었다. 그 아지트에 누우면 내 머릿속은 지상최대의 쇼가 펼쳐지곤 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헛간에 누운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를 상상했다. 삐~하고 기적소리가 들려오는 20리 밖의 포항은 어떤 도시일까? 내가 사는 오천에는 해병대 군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2층짜리 오천극장, 슈퍼, 중국식당이 전부였다. 군인들만 오는 우리 동네 당수도장도 1층짜리 창고 같은 집이었다. 포항에는 5층짜리 건물도 있다던데? 그 5층 건물의 계단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상상했다. 기차는 길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대구와 서울은 얼마만큼 큰 도시일까?
밤하늘의 달과 별
밤만 되면 밤하늘에는 별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낮에는 볼 수 없는 달과 별이 밤만 되면 빛의 잔치를 벌인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밤에도 달과 별은 빛을 내며 우리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특히 그 가을의 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을만 되면 고구마 밭을 지키기 위해 밭에 군용텐트를 친다. 초등학생인 나는 겁이 났지만 나 혼자 텐트에서 잔다는 그 설렘 때문에 없는 용기를 내어 추운 텐트 속에서 자곤 했다. 누워 있으면 가을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도 들려오고, 가끔씩 부엉~하고 부엉이 소리도 들려오곤 했다. 그러나 가을밤의 압권은 밤하늘의 별이었다. 파란 밤하늘에는 별들이 이미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반짝 반짝. 하! 별이 어떻게 저렇게 많을까?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는 밤하늘의 수많은 떼별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저 많은 별들 중의 어느 별에는 우리 같은 인간도 살고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아닌 인간이었다. 저 별들은 도대체 왜 있는 것일까? 왜 빛이 날까? 그 물음에서 조금만 더 발전을 했으면 내 운명은 달라졌을 것인데, 내 사고는 자연과학이 아닌 누나가 사다놓은 세계문학 속에 빠져 있었다. 죄와 벌, 햄릿, 대지, 카르멘 등등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헛간과 밤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세계문학이 어린 시절의 내 상상력의 고향이자 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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