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월 오일장. 찌짐과 녹두로 찌진 빈대떡, 그리고 시골 양조장에서 만든 대포.
대포와 탁배기, 그리고 막걸리
오늘밤에도 마트에서 사 온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날 막걸리를 떠올린다. 이건 막걸리가 아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 서울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옛날 고향의 술도가에서 만든 그 막걸리를 그리워한다. 탁배기라고 불렀었고 그리고 대포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발에 한잔 가득 따라 목젖이 떨리도록 마시면 갈증이 사라지고 배가 금방 그득해져온다. 크으, 하고 잔을 내려놓고 된장으로 무친 나물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면 입안의 텁텁함이 사라진다. 진보된 오늘, 왜 그때의 그 막걸리를 생산해내지 못할까.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옛날의 그 막걸리를 그리워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다. 대구에서 생산하는 불로 막걸리가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작년 여름 횡성에 갔을 때 그곳 시장에서 마신 막걸리가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배신의 계절
술에 취해 자고 있다 눈을 뜨니 옆지기가 계속 웃고 있었다. 와 웃노? 백분 토론이 재미있네요. 여당 대통령 후보들이 나와 토론을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의 색깔을 보이고 있네요. 손학규 후보는 유들유들하고, 정동영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질문을 할 때마다 그야말로 눈을 내리깔면서 쩔쩔 매고 있고, 버럭 후보는 계속 조용하네요. 잠이 덜 달아난 얼굴로 허허 하고 나는 웃었다. 버럭 후보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아닌가.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할 때 야당의 몇몇 의원들이 총리를 향해 야유와 고함을 칠 때마다 우리의 버럭 총리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예의 십팔번으로 응수를 한다. 차떼기 당의 의원들이 어디 함부로 큰소리를 치느냐? 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을 향해 손짓을 하면서 지금 총리가 말을 하고 있는데 어디 겁도 없이 고함이냐! 라고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 버럭 후보가 오늘은 아주 조용하다는 것이다. 총리가 아니잖아. 이제 유권자들에게 잘 보여야지. 유시민 후보는 물을 만난 듯 날카롭게 이 후보 저 후보를 향해 맹공을 퍼붓네요. 말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다. 한명숙 후보는 시종일관 천년만년 이 당을 지키자고 한 그 약속을 저버리고 당을 떠나버린 정동영 후보를 향해 비수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권력의 적은 측근이요, 재벌의 적은 형제라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제의 사부를 칼로 베어버려야 한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대통령 탄핵 안건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그 날 열린 우리당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특히 정동영 의원은 바닥을 발로 차고 야당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런 그가 열린 우리당의 인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자 미련 없이 당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당에서 보면 분명 배신이다. 청와대의 노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런 그에게 통일부 장관 자리를 준 것에 대해 지금 어떻게 소화를 시키고 있을까. 백년의 당을 건설한 그들과 당이 4년은커녕 3년 몇 개월 만에 공중분해가 되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기독교, 그리고 살아 돌아온 그들
기독교를 생각하면 나는 내가 태어난 그곳의 그 교회를 떠올린다. 내가 태어난 곳은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부대가 있는 곳이었다. 그 부대에는 동문과 서문과 남문과 북문이 있는데 우리 동네는 남문 밑에 있었다. 그 읍에서는 가장 큰 동네였다.
남문 밑 우리 동네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학교 뒷산의 큰 콘크리트 바위나 헛간에 누워 있으면 저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다. 그리고 그 기적소리에 온통 신경을 다 보낸다. 그 다음은 상상의 세계가 나타난다. 철길을 달려 가 닿은 서울. 그 서울과 그 너머의 세계. 그리고 하늘 저 너머 세계의 존재. 그 그림이 빈 캔버스에 그려질 때마다 막막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행복이 밀물이 되어 내 가슴에 밀려오곤 했다.
낮이 행복이라면 밤에 들려오는 그 소리는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밤 9시면 들려오곤 한 취침 나팔소리와, 수요일과 일요일 초저녁이면 들려오곤 한 교회의 종소리가 그러했다. 밤 9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가 이상하게 구슬프게 와 닿았다. 전깃불이 없는 캄캄한 밤이어서 그랬을까. 캄캄한 겨울 밤, 부대 안에서 들려오는 그 나팔소리를 소화시키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었다. 뿐만 아니라 내 첫사랑이 살고 있는 우리 읍내에 하나뿐이었던 교회의 종소리 역시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어느 날 더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집을 나가 한 걸음에 교회로 달려갔다.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교회에 도착하면 그뿐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님이 불교신자인 것이었다. 따라서 나도 덩달아 불교신자였다. 해서 교회 안에 발걸음을 들어 놓을 수 없었다. 내 자리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전부였다. 몸을 숨긴 나는 탱자나무 사이로 교회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목사님 설교 소리가 들려왔고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 노래 소리가.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리네
저 깊고 깊은 산 속 오두막에도 탄일종이 울리네
찌짐도 푸짐하고 아주머니 인심도 푸짐했다. 시원한 대포를 찾자 아저씨가 집에 가서 시원한 대포를 가져왔다.
생략하고, 그때는 조용했다. 교회 밖 동네도 조용했고 교회 안도 조용했다. 간혹 밤을 뚫고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다. 목사님 설교도 조용했고, 교회 종소리도 조용했고, 노래 소리도 조용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미덕이었던 그때의 우리는 너무 가난했었다. 하지만 그 가난이 싫어 자살을 한 사람은 없었다.
오늘 우리 한국의 기독교. 간이 부은 게 아니라 정신이 부어 있다. 특히 교역자들의 정신은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언제 터질지 모른다. 반성해야 한다.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라 우리 가슴의 내부를 향해 묻고 물어야 한다. 나는 진실로 진짜인가 가짜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신을 감싸고 있는 기고만장한 그 오만을 버려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위이다. 같은 크리스찬이어도 급수가 다르다. 오늘도 오른팔이 하는 일을 왼팔이 모르게 이 땅의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청소년들을 돕는데 온몸을 태우고 있는 젊은 청년 김장훈 가수. 반에 반만 닮으면 우리 모두는 건강하게 부활할 것이다. 그러니까 실천이 답인 것이다.
삶에는 값있는 삶과 값없는 삶이 있다. 값있게 살다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땅바닥에 닿을 만큼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야 한다. 생명의 메시지는 소리가 낮아도 멀리 울려 퍼질 것이고, 거짓 메시지는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멀리 가지 않는다. 거짓 세월 다 보낸다. 나를 살리고 내 형제를 살리고, 그리고 내 이웃을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정말, 진실로,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일체의 계급장 같은 것들은 다 떼고.
예수님의 그 맑고 밝은 가난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인칭 삶은 정말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는 삼인칭 삶을 살아야 한다.
의사와 변호사는 부자로 살아도 되나
내 조카 하나가 지금 재활의학과 의사로 서울 모처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 일학년을 다니다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해 다음해에 의대에 들어갔다. 아마 수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조카가 충남 어느 고장에서 공중 보건의로 보내다 제대를 하고 개업을 했을 때의 어느 날, 7촌 아제 부음을 듣고 병원에 왔을 때 내가 물었다.
마이 오나.
네.
아무꺼시야!
네.
관상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네?
병원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먼저 봐라. 한눈에 가난해 보이면 돈 마이 받지 마라. 반대로 한눈에 땅 투기나 집 장사를 해 떼돈을 번 사람이다 싶으면 돈을 좀 더 받아도 된다. 알겠제.
네.
존경받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몇 달 전, 충무인가 통영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삼십대의 아주머니가 치아가 안 좋아 어느 치과에 가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6천만 원 가까이 나온 모양이었다. 집 한 채 보다 더 나왔다. 몸이 떨리고 간이 왈왈 떨려왔다. 항의를 하고는 돈 지불을 미루었다. 그러자 2천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인심을 쓴 모양이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고 몸이 떨려 방송국에 살려주십시오, 하고 북을 두드렸다. 피디가 나서서 조사에 들어갔다. 결론은, 네덜란드인가 덴마크에서 만든 재질이 제일 고급인데, 그 재료로 만들면 임플란트 하나에 45만 원이라고 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옆지기에게 말했다.
하나에 1백 5십만 원 정도 받으면 되겠다. 50만 원 재료비, 의사 50만 원 먹고, 나머지 50만 원으로 간호사 월급과 병원 월세, 그리고 기타 등등.
그 정도면 적당하네요. 사실 우리 노인네들이 치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잖아요.
그래서 오복 중에 으뜸 오복이라 했다. 70 먹은 노인네가 삼겹살 씹어 먹으면 그 이상 행복이 어딨노. 치아만큼은 무료로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치아 하나에 1천만 원씩이나 받으면 그 놈은 순전히 도적놈이다. 차라리 그러지 말고 빨대로 배래기 간을 빼 묵아라.
그러게 말이에요.
지 식구들에게도 그렇게 받을까.
하하하.
개똥소똥 대학마다 다 의대를 만들고 법대를 만들어 줄줄이 배출시켜야 한다.
그래서 의사와 변호사가 더는 밥벌이가 안 돼 똥지게도 지고 리어카를 끌면서 청소부도 하고 그래야 한다.
산 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 새. 강에서는 떠내려가고 산 위에서는 날고...
방법은 있다. 도마다 하나씩 있는 국립대학교 의대에 가난한 수재들을 50프로 입학을 시켜 공짜로 교육을 시킨다. 저 쿠바에서처럼. 그렇게 해서 의대를 졸업하면 오지로 가 평생 죽을 때까지 공무원 신분의 보수를 받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무료로 돌본다. 의술이 아닌 인술, 부보다는 명예,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과 삶. 그런 삶이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걸 폭넓게 전염시켜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탁을 해야 한다.
가치관을 세탁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길이 가장 값있는 삶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 세계 사람들의 가치관을 핵으로 터뜨려야 한다.
정신의 혁명이 일어나 지금까지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가치관을 폭파시키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을 시켜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가 세세생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뒷이야기- 테레사 수녀님, 법정 스님, 그리고 장민아 집사를 아십니까? 그들의 삶을 아십니까? 며칠 전 그 분들의 삶을 놓고 생각을 하다 큰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확신이냐 아니면 혼돈에서 오는 신념이냐? 또 목이 마르다. 탁배기는 없고 막걸리도 없고 대포도 없다. 어디 가서 내 갈증을 다스릴까. 차라리 노래를 부르고 싶다. 텅 빈 들판에 나가 두 팔을 벌린 채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다. 목숨이 다하면, 그래서 눈을 감으면, 내 목마름이 해소가 될까. 2007910도노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