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우리집의 수문장이었다.
지난 금요일 광명에 사는 누님과 포항으로 내려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순천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 곳 만의 갈대밭과 바다를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삶이 계획대로 안 되듯이, 방향을 털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누님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쭉 내려가다 황천길을 만난 것은 영동 제 1터널 안에서였다. 앞에 가고 있던 1톤 트럭이 무슨 일인지 삑 정거를 하는 바람에 그 뒤를 따라가던 차들이 혼비백산 급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섭게 질주를 계속하고 있던 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설 수가 있나.
쾅!
쾅!
칠포해수욕장. 그날 바람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 다음은 누님 차였다. 순간적으로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옆으로! 였다. 쾅! 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판단은 조수가 아니라 운전수였다. 뒤에는 덤프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수 말을 무시하고 운전수는 앞차를 들이박았다.
쾅!
4중 추돌.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제일 먼저 목과 허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차간 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다. 그렇다면 누님이 앞차 3대를 전부 책임지나? 하, 싶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여들자 누님이 그들에게 사과를 했다.
어쨌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혹시 다친 데는 없습니까?
황량한 가을의 칠포해수욕장
판단을 잠시 유보한 그들은 자신들의 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차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그동안 뉴스에서 본 수많은 사고현장이 떠올라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로 다가가 수신호로 터널 안 2차선으로 쾌속 질주를 하고 있는 차들을 막았다. 아비규환! 혼비백산! 벤츠와 나와의 순간적인 눈 맞춤. 사내의 눈은 얼어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2차선으로 들어가라고 눈에 기합을 준 채 팔을 마구 휘둘렀다.
누님이 우리 세 사람을 살렸다면, 그 뒤의 일곱 사람의 목숨은 내가 살렸다. 내가 차 뒤에서 수신호를 하지 않았다면 추돌을 일으킨 차 3대에 탄 그들은 그날 그 시간 황천길을 갔을 것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놓고 보니 추돌사고를 일으킨 원인자인 1톤 트럭은 이미 뺑소니를 친 다음이었다. 프로였다. 토끼는 데 이력이 있는 선수였다.
생략하고, 한쪽 대가리가 터지고 눈알이 빠진 차를 몰고 우리는 어쨌든 포항으로 내려갔다. 장장 10시간 만에.
바람과 모래가 잔치를 벌리고 있는 칠포해수욕장
칠포호텔
호텔 앞에서. 이곳만 찾으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내가 오지게 재수가 없어 열 몇 번 자동차 면허시험에 떨어져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을 때, 후배가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갔더니 그 다음날 아침 이곳 호텔 앞에 차를 몰고와 운전연습을 했다. 호텔 앞 언덕에서 스톱! 오라이! 하고 그가 말하며 언덕길 연습을 했다. 형님, 운전을 이렇게 잘 하는데 왜 떨어집니까? 내가 아나?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누이의 둘째 아들인 승현이가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해 어느 날 엄마를 따라와 구경을 한 조카. 떨어진 내가 언덕을 올라오자 그놈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해가 안 된다. 칠포 호텔 앞에서 운전연습을 마치고 호텔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나와 다시 시험장에 간 나. 그날도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또 쾅이었다.
텅 빈 고향의 어느 집에 들어가 질그릇 두 개를 훔쳐나오고 있는 두 누이. 이 집은 모모 자동차 미국 공장의 공장장(부사장)으로 있는 모모 형님이 살았던 집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앞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누이가 텔레비전에 종종 나오는 빈 집 털이범을 너무 닮아 있다.
몇 십 년 묵은 명품된장을 꺼내고 있는 누이.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누님과 누이와 매제와 옆지기. 나는 설사 때문에 산 밑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다.
호미곶 바다에서 고등을 잡고 있는 누이와 매제.
부산의 매제. 성실하고 인간성이 바다만큼 넓은 매제. 노래도 가수 뺨칠 정도로 잘 부른다.
호미곶의 명물.
포항 막내 누이. 막창에 회에 북부해수욕장의 어느 얌체상이 끓여 내놓은 해물탕까지 담당을 하며 형제애를 과시한 누이. 외유내강형이다.
막내 누이의 둘째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 조카는 2학년이고 친구는 1학년. 승현이가 학교에서 인기가 있느냐 라고 물었더니 은근히 인기가 있어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밤에 방파제에 갔다 다시 설사를 만나 삼발이 어딘가에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나. 설사는 외상이 없다.
등대 앞에서.
북부해수욕장의 밤풍경
환호해맞이 공원에서. 이곳에서 밤마다 섹스폰 연주회가 있다.
섹스폰 연주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 막내 누이 차. 매제는 마침 중국에 가고 없었다.
섹스폰 연주자. 그날 밤 신청곡을 듣고 떠나가는 패들을 향해, 신청곡 끝났다고 금방 자리를 털고 떠납니까? 매너 좀 지키십시오, 라고 말을 하는 바람에 잠시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고향후배집.
구룡포 바다. 꿀떡꿀떡 마셨으면 싶은 시원한 바다.
뒷이야기-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특히 역마살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여행을 통해 나를 세탁하고, 여행을 통해 타인의 삶을 보곤 한다.현장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버리고, 그리고 채우고 온 여행이었다. 20071030도노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