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오주관 2008. 5. 24. 12:44

   

  

22일 목요일 저녁, 구청 청사 앞에서 정 교수를 만난 나는 그를 데리고 도노강으로 갔다. 똑바로 술집으로 가기에는 너무 밝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님 머리를 깍아 드리고 저녁을 얻어 먹은 뒤라 배가 너무 불러 더 이상 집어넣을 공간이 없기도 했다.

 

도노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자전거에 몸을 실은 사람, 그것도 아니면 인라인 스케이트을 타고 있는 사람들.

 

며칠 전 내린 비로 도노강은 맑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는 오리들이 물을 가르며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오리들 사이에 왜가리도 보였다.

 

"도노강에 황포돗대가 떠다니면 좋겠제."

"좋겠지요."

"저 강에 잉어들이 떼를 지어 올라오고 있다."

"그래요?"

"잉어, 오리, 왜가리, 그리고 갈매기들."

"그렇다면 먹이 사슬이 괜찮은 모양입니다."

"그러게."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인 정 교수에게 내 속내를 드러냈다.

 

도노강에 황포돛대

 

 

 

  

"내가 만약 서울시장이라면 이 도노강에 황포돛대가 다니도록 하겠다. 한강에서 의정부까지."

"멋진데요."

"이 강이 한강 다음으로 넓고 긴 강이다. 서울북부를 관통하는 아주 훌륭한 강이다."

"맞습니다."

"청계천 사업은 저리 가다 다. 그리고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수심이 1미터 정도만 되면 충분히 돛배가 다닐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침이면 돛배가 의정부에서 출발을 해 한강에 가 물고기를 잡고, 저녁이면 다시 돗배가 황포돛대를 올린 채 의정부로 올라온다. 그림이 그려지제."

 

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을 축였다. 흥분을 하면 입부터 말라온다. 나는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으면 어떤 세상일까, 를 자주 생각하곤 한다. 만화, 공상, 상상력, 그리고 역동적인 힘과 사람을 살맛나게 만드는 굿판을.

 

환경론자들은 청계천을 실패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두절미하고, 전체를 보았을 때 창계천은 그런대로 졸작은 아니다. 도심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검은 콘크리트를 걷어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었다. 늘 회색빛인 검은 도심지의 한복판의 고가도로를 걷어내었다는데 초점을 맞추면 그 작업은 작은 혁명이었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바다호수

 

 

 

  

"그리고 또 있다. 내가 만약 서울시장이라면,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도로를 걷어내고 호수를 만들 것이다. 작은 바다호수를."

 

해가 저무고 있는 도노강을 바라보면서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한번 생각해봐라, 광화문 바다호수에 돌고래들이 물을 가르고, 그리고 물 위로 솟아 오르는 그 광경을. 물론 인천에서 바닷물을 끌어 온다. 몇 십 조를 공적 자금으로 사용하는데, 그네지꺼 인천 바닷물을 좀 끌어다 사용하기로 뭐가 어예 됐다 말이고. 안 글라?"

"맞습니다.'

'암, 맞고말고. 그 광화문 바다호수에 멸치떼가 오고 오징어가 오고, 해서 고깃배가 통통 연기를 내뿜으며 멸치잡이를 하고, 불을 밝힌 오징어 배가 오징어를 잡는다. 그림이 멋지제? 그리고 일년에 한 번씩 텔레비전 뉴스에, 어젯밤 광화문 바다호수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던 천호동에 살고 있는 서른 살 먹은 한 아무꺼시가 옷을 깡그리 벗고 바다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다 백상아리에 물려 한쪽 다리와 불알이 잘려나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박팔갑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화면에 마이크를 쥔 박팔갑 기자가 나와 있다.

 

"박팔갑기자."

"네, 현장에 나와 있는 박팔갑입니다."

"어떻습니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데, 그럼 다리와 불알은 온전하게 붙였습니까? 

박기자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네, 네 시간 걸려 접합수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떨어진 다리와 불알을 접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 그렇습니까?"

"네. 의료진에 따르면 오른쪽 다리라도 붙여 보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붙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워낙 다리와 불알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그 기능이 손실되어서."

"하, 그렇군요. 불알이 없는 남성, 생각만 해도 슬픕니다. "

"네, 그렇습니다."

"박기자, 수고했습니다."

 

" 어떠노, 기가 막히제. 살면서 그런 뉴스도 접하고 그라면 머릿속이 소제 되겠제."

"하하하, 우리 성님 멋지십니다." 

 

"멋지고 말고. 그라고 말이다. 서울에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한 자리에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 이벤트가 없다. 해서 저녁이면 광화문 바다호수나 청계천광장에서 굿판을 벌려 신명나게 노는 거다. 관광객들이 서울에 오면 이태원,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그리고 인사동거리를 활보하다가 돈도 한번 때깔나게 못 써보고 잠 자러 간다. 이게 말이 되나? 해서 인사동에는 크고 작은 유스호텔과 놀이마당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 신명나는 놀이를 통해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사동 한가운데에 그런 굿판을 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어떠노 좋제?"

"괜찮은데요."

 

남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상

 

 

그림:Seoul Tower 2.jpg

  

"떠갈꺼 또 있다. 저 남산에 우뚝 서 있는 남산타워. 서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남산타워를 헐어버려야 한다. 그 대신 그 자리에 한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을 구축하는 거다. 어떤 상징물?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국을 찾은 많은 관광객이 남산 위에 우뚝 서 있는 상징물을 보고 아, 저 상징물이 한국인의 전형이구나! 하고 감탄을 하도록. 그 상을 세우면 세계 5대 명물 안에 들 거다.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에펠탑, 그리고 리오데자네이루의 예수상. 4대 명물 안에 드네. 어떠노, 멋지제?"

 

정 교수가 담배를 힘있게 빨았다.

"그림이 정말 좋습니다."

"한반도 대운하에 목숨을 걸게 아니라, 서울부터 살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지역에 걸맞는 상징물을 구축해 시민들의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세탁해 줄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반도 대운하에 목숨을 걸지 마라. 그 대신 수도 서울을 살맛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청계천 사업에 많은 시민들이 열광했었다. 해서 밤이면 청계천을 거닐며 사랑을 키워 나가고, 그리고 지친 육신을 세탁하곤 한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걸으며 꿈과 희망을 설계하곤 한다. 

 

수도 서울. 삭막하다. 볼거리가 너무 없다. 한국에 관광온 그들이 진작 돈지갑을 마음껏 얼어보지 못한 채 인천공항을 빠져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들이 서울에 왔을 때 눈과 마음을 세탁해주고, 그리고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친 심신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문화와, 그리고 신명나는 굿판을.  

 

밤이 되자 쌀쌀했다. 우리 두 사람은 도노강을 나와 술배를 채워줄 곳으로 갔다. 처음 가본 역 앞 포장마차에서 고추장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는데, 돼지고기 맛이 니 맛도 내 맛도 없었다. 소주 한 병을 비울 무렵 옆지기가 왔다. 소주와 돼지고기를 마시고 뜯어 씹으면서 미국쇠고기협상과 대운하를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무뇌와 독서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금이 대충 일백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교과서를 달달 외워 진학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런 삭막한 그림들만 자꾸 나오지. 정말 이름값을 하는 거가."

 

그날 밤 술값은 정교수가 냈다. 그곳을 나온 우리는 소세지집으로 갔다. 자리에 앉은 내가 소제지를 눈여겨 보고 있는데 저급한 고기와 기름치를 가지고 소세지를 만든다고 정 교수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노가리와 기타 등등을 시켰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족발을 사 도노강에 가서 마시자, 라고 합의를 보고는 다시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면서 정치를 이야기했고, 그리고 아픈 역사를 이야기했다. 세계를 뻗어 나가기에는 너무 땅덩어리가 작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리고 세계의 중심은 언젠가 바뀔 것이다, 라는데 동의를 했다.

 

새벽 두 시, 정 교수와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은 정 교수가 택시에 몸을 싣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오늘도 정치권은 시끄럽다.

야당의 몇몇 꾼들  때문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은 부결되었다.

하지만 나라의 주제는 변한 것이 없다.

 

한반도 대운하에 목숨 걸지 마라.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청계천광장의 촛불집회가 가리키는 그 끝이 어디에 있는지를 쳐다보아라.

미국 산 쇠고기협상, 재협상해야 한다.

밤이면 청계천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우리나라의 희망이다. 

 

 

뒷이야기- 어젯밤 도노강 둔치를 걸으면서 그들을 보았다. 날아가지 않은 오리들 중에 한 놈이 새끼를 쳤는지 병아리보다 작은 새끼들을 데리고 물로 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고물고물 물로 다가가는 새끼 오리떼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제 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날아가지 못할 것이다. 눌러 앉아야 한다. 강 건너편에서는 붉은 곰, 흰곰, 검은곰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잉어를 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잡아서 장에 가 파나? 아니면 매운탕을 끓여 소주? 안 잡으면 안 되나? 꼭 잡아야 되나? 다리 위에 도착한 나는 맨손체조를 하였고, 그리고 기합을 주면서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잠시나마 하늘이 뱅뱅 돌았다. 아이고, 이제 가자. 줄 방귀를 뀌면서 가야 30분이다. 가자, 둥지로.2008523도노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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