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엘렌 H, 브라운 지음-이재황 옮김
이 책을 잡는 순간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700쪽 짜리 책을 온존하게 읽을 수 있을까. 5년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것도 700쪽 짜리 경제서적을. 책 하나에 매달리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한곳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일의 분산을 말한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영양가가 크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이 잡자. 어쨌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보아야 할 책이라면 보아야 한다. 잡은 책이니 끝까지 가보자. 더구나 관심이 많은 경제, 그것도 화폐 쪽이지 않은가.
이번 여행은 KTX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오늘 아침 인터넷에 들어가 서울에서 포항 가는 새마을호의 시간과 값을 확인했다. 나는 30프로 할인이 되어서. 4만 몇 천 원이라고 한다. 고속버스는 2만 8천 원. 30프로 활인을 해도 기차보다는 고속버스가 싸다. 4월 19일 해병대에 입대를 하는 조카를 위해 내려간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올라올 생각이다. 해병대를 제대한 자기 형이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동생은 한사코 나도 형의 뒤를 잇겠다고 결심을 하고 입대 원서를 내었다. 해병대가 있는 포항시 오천읍 용덕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 잘 안다. 해병대가 얼마나 박력이 있고 괜찮은 군대인지. 내 친구들은(호야, 종렬, 떡호, 떡칠) 전부 해병대 출신이다. 나만 포항 어민중대 방위출신이다.
긴 여행은 이제 엉덩이가 아프다. ‘달러’ 라는 이 책도 엉덩이와 머리가 좀 아팠다. 하지만 아픈 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를 한 것은 도대체 어느 집단이 우리 인류의 공공의 적인지를 알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 공공의 적으로 우리 인류 전체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고 넘어가자. 조금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크게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온 그들이 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다.
환영합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보다는 덜 지루할 겁니다. 긴 여행이니만큼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은 커피를, 캔맥주를 마시고 싶은 분은 캔맥주를, 음악을 듣고 싶은 분은 음악을, 오징어 땅콩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분은 그렇게 알아서 각자 돈으로 해결하면서 저와 여행을 떠납시다. 자 출발합니다. 기관사 아저씨, 오라이!
나이를 먹으면서 정치와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젊어서는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소설에 내 젊음을 투자했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정치와 경제 분야에 안테나가 꽂히고 있다. 특히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제 쪽에 시선이 가곤 한다. 도대체 누가 도둑이고 어느 집단이 양심에 철판을 깐 채 우리네의 삶과 세계경제를 깔아뭉개고 있나?
우리말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뙌놈이 먹는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사기꾼들 얼굴이나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어느 집단이 도둑인지는 이미 밝혀졌다. 미국 뉴욕의 월가에 처박혀 세계경제기상도를 쥐락펴락한 그 집단들이 바로 세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주범들이었다.
지난 IMF 때(1996~1999) 우리나라에 진출해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철수를 한 바로 그 무리들이다. 그들이 제3국을 들어올 때는 항상 IMF를 등에 지고 온다. IMF가 약주고 병을 줄 때 그들이 하는 역할은 병을 주는 일이다. IMF는 제3세계에 달러를 빌려주면서 반드시 조건을 단다. 규제를 완화시켜라. 덩치가 큰 국영기업체를 민영화시켜라. 구조조정을 해라. 군살을 빼라는 말은 국가가 지고 있는 부채를 줄여라 라는 말이다. 정부는 그들의 말을 잘 듣는다. 규제를 철폐시킨다. 구조조정을 한다. 그리고 국영기업체를 시장에 내놓는다. 그 때 도둑들이 재빠르게 덤벼들어 덥석 문다. 그것도 아주 똥값으로.
동물의 왕국을 보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사자는 육식동물이다. 3일을 굶은 사자는 배가 너무 고파 사냥에 나선다. 7전 7패. 그 끝에 병 든 얼룩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식구들을 위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힘을 모은다. 죽을힘을 다한 끝에 병 든 얼룩말을 잡는다. 잡았지만 너무 지쳐 있다. 덩치가 큰 얼룩말을 앞에 놓고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전심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하늘이 뱅뱅 돈다. 숨을 헐떡이며 조금 쉬었다가 끌고 가야지 하고 있는데, 아뿔싸! 냄새를 맡고 달려온 저 웬수들은 누구인가? 천적인 하이에나들이 고개를 처박은 채 킹킹 침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다. 사자 입장에서 보면 하이에나들은 날강도다.
제조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자다. 제3세계도 마찬가지다. 땀은 말로 흘리지만 이익은 별로 없다. 20프로가 남니 안 남니 하며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을 그 시간, 양심불량의 금융 사기꾼들은 시원한 룸에서 컴퓨터를 상대로 읽어도 해독이 안 되는 기호와 물리학 그리고 수학 등등을 동원해 난해한 공식을 만들어 세계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달러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의 중심에는 달러가 있다. 이 책에서 그들이 달러를 가지고 어떻게 마술과 요술을 부리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달러는 있지만 그러나 달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공중에 붕 떠 있는 달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체는 없고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돈이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세계경제를 손에 쥐고 있는 그들의 신통방통 마술 때문이다. 그들의 마술은 너무 빠르고 너무 기가 막혀 아무나 볼 수 없다.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양이 방대한 것은 미합중국의 출발과 함께 돈의 역사를 기술하다 보니 양이 그렇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책의 핵심은 방대하지 않다.
앞으로 밑지고 뒤로 남는 장사를 하려면 분식회계를 해야 한다. 들통이 나면 된서리를 맞지만 들통이 나지 않으면 크게 남는다. 솔직히 우리나라 대기업의 생명은 줄 위의 광대나 다름없다. 떨어지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고 만약 줄 위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고 만다. 그 말은 분식회계를 하지 않고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이 있을까? 삼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바로 분식회계에 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키게 만들어놓고 1프로도 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그 큰 그룹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김용철 변호사는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왜 깜짝 하지 않고 있을까?
무지 때문이다.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언론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분명 망하는 장사를 하고 있는데 뒤로는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분식회계로 눈을 속이기 때문이다. 이 분식회계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달러를 프랭크 바움이 쓴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를 빌려 그려나가고 있다. 그 책의 주제가 금융과 재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화폐에 관한 우화인 고전동화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아, 하고 어떤 보이지 않는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미국 대통령(1829~1837)은 금융카르텔을 가리켜 ‘서민의 살점을 뜯어먹는 다두괴물이라고 불렀다.
전 잉글랜드은행 이사이자 1920년대 영국에서 두 번째 갑부였던 조시아 스탬프(Josih Stamp) 경이 1927년, 텍사스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했다.
현대 금융시스템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돈을 찍어낸다. 그 과정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속임수의 명작일 것이다. 금융업은 불공정 속에서 잉태되고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 은행가들이 지구를 소유한다. 그들에게서 지구를 빼앗아도 돈을 찍어낼 권한이 있는 한, 그들은 펜을 한번 휘갈겨 그것을 다시 사들일 돈을 찍어낼 것이다.
●대중의 믿음과는 반대로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무책임하게 달러를 찍어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은행들이 장부 기입을 통한 대출로 통화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은행은 민간 은행 컨소시엄이 소유한다. 시티뱅크(Citibank)와 J. P. 모건체인스(J.P.Morgan Chase Company)가 대주주다. 이 두 거대 은행은 J. P. 모건과 존 록펠로가 만든 제국들의 금융 초석이다.
●달러는 미국의 연방은행이 발행한다. 그런데 이 은행은 미국의 정부기구가 아니라 민간 상업은행들이 출자해서 만든 엄연한 ‘민간은행’이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의 국가화폐도 아니고 법정통화도 아니다. 게다가 금 같은 것으로 뒷받침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달러는 가짜 돈이고 위조지폐다. 이 휴지쪼가리가 지금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어 세계 경제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패권 이외에, 이런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조시아 스템프 영국의 갑부)
●한 나라를 정복해 예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칼로 하는 것이고, 빚으로 하는 것이다.(존 퀸시 애덤스, 미국 대통령)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하는 짓을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과 민간 상업은행들이 똑 같이 따라 한다. 원리도 같다. 이 원리에 의하면 거대 다국적 은행은 항상 횡재를 하고, 전 세계 국가와 기업과 백성들 대부분은 결국 빚의 노예가 된다. 이들의 잔치에 따라 다니는 IMF는 들러리다.(이런 정교한 사업에는) 100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알아챌 수 없는 방법이 사용된다.(존 메이나드 케인스, 영국의 경제학자)
미국이라는 나라를 누가 쥐고 있느냐. 국민은 아니다. 의회도 아니다. 사법부도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다. 자본이 쥐고 있다. 이들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희생된 대통령이 여럿이다. 그 가운데 링컨과 케네디도 있다. 케네디 암살 배후의 조종자는 공식적으로 노출된 적이 없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케네디가 국제 기업-금융-군사 카르텔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의 핵이자 결론은 끝없는 인간의 탐욕이다. 탐욕이 마술과 요술을 부려 세상의 부를 세상에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다. 온갖 규제를 철폐시켜나가면서.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 자들은 벌써 아! 하고 눈치를 챘을 것이다.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구나.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너무 닮아 있지 않나. 시장자유경제라는 이름하에 온갖 규제가 철폐되어가고 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켜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고, 나라의 빚을 메우기 위해 서민들의 코 묻은 쌈짓돈을 빼앗으려고 수를 만들고 있다.
나라와 인종과 문화는 달라도 탐욕이 재산인 그들이 노리고 있는 수법은 하나다. 이 마술과 요술에서 벗어나려면 무지한 백성들은 똘똘 뭉쳐야 한다. 그리고 싸워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의 돈이 결국 국민의 돈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돈이 내 돈이고 나라의 돈이 바로 내 돈이다, 라는 사실을 이마에 새긴 채 살아야 한다.
탐욕과 무지가 싸우면 백전 백승 탐욕이 이긴다.
탐욕에게 이기려면 딱 하나, 뭉쳐 싸워야 한다.
이자 없는 대출
세금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까?
뒷이야기-탐욕과 무지는 끝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한다. 그 공식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21세기의 삶이 이렇게 쓸쓸한 것이다. 우리는 결국 탐욕과 무지 때문에 멸망할지도 모른다.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를 떡 주무르듯 쥐락펴락하고 있는 그들의 그 탐욕도 결국 패배를 잉태한 채 멸망의 나라로 가고 있다. 지금 당장 그 사실을 애써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진실로 붙잡고 싸워야 할 주제는 아멘이 아니고 무지와 탐욕이다.201049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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