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대중 자서전을 읽으면서

오주관 2010. 8. 25. 11:52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의 정의는 무엇일까? 젊은 시절 한 때 내가 잡은 화두였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때 양미간을 좁힌 채 시간과 사투를 벌리다 어느 날 그래, 하며 얻은 결론은

 

시간은 변화다

 

요즘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텔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가 장안의 화제다. 정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대형서점에 들어가면 온통 정의가 넘실거리고 있다. 정의가 배고팠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의의 실종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정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정의란?

 

네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우리 두 사람은 집을 나와 차에 올랐다. 그동안 아픈 몸을 이끌고 군말 없이 전국 방방곳곳 우리를 실어다 준 애마를 타고 강남으로 내뺐다. 185000킬로미터를 뛴 애마는 자주 쉬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 푹 쉬거라. 그를 명예롭게 퇴직시켜주기 위해 더운 강남으로 내뺀 것이었다.

 

 

 

 

지난 3월 어느 토요일, 우리는 애마를 타고 강원도 설악산으로 갔다. 그날 저녁 설악산의 유스호스텔에 방을 예약한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밥은 현미였고 반찬은 식당 음식이었다. 소주도 한잔했다.

 

다음날 잠에서 깬 내가 창문을 열었을 때, 밖은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나가보니 눈이 허리까지 왔다. 땀을 흘리며 삽으로 눈을 치운 우리는 서둘러 차에 올라 설악을 떠났다. 아침 9시에 설악에서 출발한 차가 강릉 인터체인지에 오니 어두웠다.

 

속초에서 발이 묶인 차들이 가관이었다. 외제차도 국산차도 전부 도로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통제 불능. 그러나 은퇴를 코앞에 둔 우리의 애마 엑센트는 두 눈 부릅뜬 채 일자로 잘도 걸어가고 있었다. 혼다가 베엠베 뒤를 쿵 하고 박았다. 뒤를 이어 에쿠스가 추위에 얼어 한쪽 발에 마비가 왔는지 비틀비틀하며 도로를 벗어나 하수구에 쿵 이마를 박았다. 잠시 후 아우디가 소나타 옆구리를 쿵 하고 박았다.  

 

 

 

 

저것들이 낮술을 마셨나?

 

강남에서 헤어졌다. 나는 교보문고로 옆지기는 친정으로. 교보문고에 들어온 나는 아이들이 많은 코너 앞에 퍼질고 앉았다.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쳤다. 오늘 내가 가지고 온 책은 김대중 자서전.

 

그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일희일비했다. 책을 넘길 때마다 흐흐흐 하고 웃었고 흐흐흐 하고 속으로 울었다. 치열하게 산 20세기의 삶이 21세기에 와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그는 거인이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린 거인이었다

그는 미래를 설계한 거인이었다

그는 복수가 아닌 용서로 이 세상을 녹인 큰 거인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진국이었다. 한국의 굴곡진 현대 정치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고는 우리의 정치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지난 몇 년 한반도의 통일을 연구하면서 나는 한 번도 그가 쓴 3단계 통일론을 보지 못했다. 독일의 통일은 보았지만 우리의 통일은 보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자주 절망과 희망을 맛보곤 했다.

 

 

 

 

김대중 자서전

이 책은 전 국민이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정치의 현장에 있는 위인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거짓말이 이제 전매특허인 이명박 대통령도 읽어야 하고, 부화뇌동에 똥오줌을 못 가리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읽어야 하고, 좌표도 없이 핏대만 올리고 있는 야당의원들도 읽어야 하고, 지금 청문회장에서 지난 거짓된 삶에 땀을 흘리고 있는 사이비들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권력에 붙어 시녀역할에 충실한 검찰조직과 친일파 후손들인 조중동도 보아야 한다. 그 책 속에 전부 들어 있다. 무엇이?

 

참과 가가

 

나는 지금 김대중 자서전에 풍덩 빠져 있다. 너무 깊고 너무 넓어 때론 멀미가 나곤 한다. 큰 풍랑 앞에 나는 자주자주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자주 내 작은 존재에 몸을 떨곤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자주 내 깊이와 넓이에 절망을 하곤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러나 자주자주 용기를 얻곤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을 설계하곤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한반도와 세계의 미래를 설계하곤 했다

 

김대중, 그는 누구인가?

그는 가까운 우리 이웃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는 갔지만 그는 살아 있다

 

어젯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가리라. 그곳에 가 큰 절 한 번 올리리라.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있어 절망했고, 당신이 있어 희망을 보았습니다.

 

 

뒷이야기- 참은 가가 있기 때문에 빛을 발한다. 가는 참이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묻힌다. 그는 탁월한 선지식인이었다. 너무 넓고 너무 깊어 자주자주 현기증을 일으키곤 했다. 그는 거한 벽이었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21세기의 희망의 빛을 만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은 우리가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할 희망이다.2010825도노강카페에서.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대중 자서전  (0) 2010.09.04
공정한 사회를 위해  (0) 2010.09.01
CHE GUEVARA-혁명적 인간  (0) 2010.08.20
진실과 상식의 게임  (0) 2010.08.05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명박 정부  (0) 201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