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저항의 아이콘
오늘날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요 우리 인간의 희망과 미래이기도 한 체 게바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는 영원히 젊고, 용감하고, 준엄하고, 반항적이고, 그리고 평등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진 피 끓는 젊은이였다.
일찍이 프랑스 문학의 거장 장 폴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이렇게 극찬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
불안한 젊은 시절
에르네스트는 1928년 5월 14일에 태어났다. 체의 별자리는 고집 세고 결단력 있는 황소자리였다.
처음에는 점괘가 헷갈리게 나왔다. 저 유명한 게릴라 혁명가 에르네스트 ‘체’ 게바라가 출생증명서에 적힌 대로 1928년 6월 14일에 태어났다면 그의 별자리는 쌍둥이자리였을 것이고, 그것은 아이가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될 것임을 의미했다. 어머니 친구였던 점성술사가 어디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계산해보았지만 결과는 똑 같았다. 점괘에 따르면 체는 음울하고 의존적인 성격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이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점을 제대로 쳤거나, 아니면 점성술사가 엉터리였다
체는 실제로는 한 달 빠른 5월 14일에 태어났다. 체의 별자리는 쌍둥이자리가 아니라 고집 세고 결단력 있는 황소 자리였다. 그의 부모가 속도위반을 했는데 그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체는 그렇게 출생비밀을 가지고 태어났다. 미숙아로 태어난 게바라는 폐렴에 걸려 2세 때 천식을 앓는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건강을 위해 천식 치료에 좋은 환경을 찾아 몇 번이나 이사를 했다. 죽을 때까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천식.
결과적으로 천식이 그를 독서광으로 만들었고 사색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체는 여행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47년 1월 17일(18살)에 그가 쓴 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의 운명을 보는 듯하다.
그래, 죽겠지. 하지만 총탄에 벌집이 되어,
총검에 찔러서. 그게 아니면 안 돼. 익사는 안 돼……
내 이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기억은
싸우는 것, 싸우다 죽는 것.
그가 몸소 실천한 혁명 원칙들- 자기희생, 정직, 대의에 대한 헌신-은 시간과 이념을 초월하여 새로운 세대의 투쟁가와 몽상가들을 키우고 자극했다.
체 게바라의 청년기
의과대학 재학 중 방학을 맞은 그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중남미 여행길에 오른다. 그때 그는 남미의 각 나라를 다니면서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마르크스와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여행 중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오스트리아인 가족의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을 때, 에르네스토는 무언가가 헛간 문을 긁으며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 안을 들여다보는 빨간 눈동자 두 개를 보았다. 칠레 퓨마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는 아버지가 준 스미스앤드웨슨 권총을 겨누어 한 방을 쏘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멈추었고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아침에 깨어 나가보니 그가 잡은 것은 퓨마가 아니라 그 집 주인이 아끼던 독일 셰퍼트 개 보비였다. 그들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라 포데로사를 언덕 아래로 밀며 도망쳤고, 그들 뒤로 집주인이 저주와 욕설을 뒤섞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인간 만들기
의과대학을 졸업한 체 게바라는 친구 카를로스 페레로와 함께 다시 방랑의 여행길에 오른다.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를 여행한다. 게바라는 하루가 다르게 혁명가로 변해 간다. 과테말라의 암살령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한 체 게바라는 그곳에서 반체제 쿠바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르를 만난다.
혁명가 체 게바라
1959년 1월 1l일 쿠바의 르헨시오 바티스타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망명을 한다. 드디어 카스트르가 아바나에 입성을 하여 쿠바 혁명이 달성되었다. 그 후 체 게라는 쿠바 국립은행총재, 쿠바산업부장관을 하며 쿠바의 두뇌로 활약을 한다.
그러던 체 게바라는 1965년 4월, ‘쿠바에서는 모든 일이 끝났다.’ 라는 편지를 남기고 불리비아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정글 속에서의 게릴라전은 고통 그 자체다.
8월이 되자 체는 병들고 지쳤고 아직까지 그와 함께 있던 대원은 24명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게릴라 군대를 결성한 지 9개월째인 8월 7일에 이렇게 썼다.
‘맨 처음 시작했던 6명 중에서 2명이 죽었고, 1명은 실종되었으며, 2명은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천식을 앓고 있다.’
체가 기나긴 방랑 중에 쓴 어느 글은 자신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글이란 바로 알레이다에게 남기는 유언이 분명해 보이는 시다. 체는 이 시에 ‘바람과 조류에 맞서’ 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시에는 나의 서명이 담기리라
나 그대에게 드리리라, 울려 퍼지는 여섯 마디 말과
언제나 부드러움이 담긴 표정,
미지근하고 깊은 물과 같은 불안,
오직 내 이 시만이 빛이 되는 어두운 사무실,
당신의 지루한 밤을 위한 아주 낡은 골무,
우리 아들들의 사진,
항상 나와 함께 하는 이 권총의 가장 아름다운 총알,
언젠가, 그대와 내가 잉태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기억,
그리고 나를 위해 남아 있는 삶의 조각,
나는 이것을 혁명에 바치네.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더 큰 힘을 갖지 못하리.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대륙혁명의 불꽃을 일으키겠다는 희망을 안고서 혁명 쿠바에서의 명예시민권, 장관직, 사령관직을 포기하고 부인과 다섯 아이들까지 떠난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한 그가 세상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공평하지 못한 불평등의 세계를 목격했다. 그는 하늘 아래 하나가 아닌 둘로 갈라져 있는 지배와 착취와 억압의 세계를 목격했다. 독서광이자 사색가인 그는 어느 해 드디어 자신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세상과 민중들의 삶을 기울게 한 불평등의 근원을 바꾸기 위해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억압과 불평등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길을 떠난 체 게바라.
볼리비아 정글에서 힘들게 싸우다 체포된 체 게바라.
‘당신은 쿠바인이오, 아르헨티나인이오?’
체를 잡은 셀리치 중령이 물었다.
‘나는 쿠바인이고, 아르헨티나인이고, 불리비아인이고, 페루인이고, 에콰도르인이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왜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하기로 했소?’
‘농부들이 어떤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소?’ 체가 물었다. ‘그들은 심장을 짓누르는 가난 속에서 야만인처럼 살고 있소. 방 하나에서 자고 요리도 하고, 입을 옷도 없이 짐승처럼 버려져서 말이오…….’
‘하지만 쿠바에서도 마찬가지 아니오.’ 셀리치가 쏘아붙였다.
‘아니 그렇지 않소. 체가 대꾸했다.
‘쿠바에도 아직 가난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쿠바 농민들에게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소. 하지만 불리비아 농부들은 희망도 없이 살고 있지. 그들은 비참하게 태어나서 살다가 비참하게 죽소.’
로드리게스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을 깨닫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체가 있던 교실에 들어가서 ‘유감’ 이라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볼리비아 최고사령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체는 로드리게스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로드리게스의 말에 따르는 체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편이 낫소……. 나는 절대 생포되지 말았어야 하오.‘
로드리게스는 가족에게 전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체는
‘피델에게 곧 아메리카에서 혁명이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거라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아내에게는 재혼해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라고 전해주시오.’ 라고 말했다.
로드리게스는 이 말을 듣고 한 발 다가가 체를 안았다고 주장한다.
그 순간 내게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지만 남자답게 행동했다. 그는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고 죽음을 마주보았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전설처럼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테란이 처형하러 들어가자 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죽이러 온 걸 안다. 쏴라 비겁자야, 네가 죽이는 건 한 사람에 불과하다.’
테란은 잠시 주저했지만 곧 반자동 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체의 팔과 다리를 맞추었다. 체는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손목을 물어뜯었다. 테란이 한 방 더 쏘았다. 체의 목에 치명탄이 박히고 폐가 피로 가득 찼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는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체 게바라를 읽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체 게바라는 갔지만 그러나 그는 오늘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엇이 그를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남게 했을까? 미래와 희망이었다. 그는 억압과 착취에 신음을 하고 있는 중남미의 민중들을 구하기 자신의 존재를 던진 혁명가였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실을 과감히 버렸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린 체 게바라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씨앗 한 알을 뿌렸으며 미래를 선사했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세계는 둘로 나누어져 있다.
세계의 고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피가 뜨거운 젊은이라면 체 게바라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 혁명의 바다에 뛰어든 그의 존재와 삶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 체 게바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자.
뒷이야기-폭염의 나날이다. 습하고 무더운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여행과 독서. 여름의 한복판에 나는 장자의 바다에 풍덩 빠져 지냈다. 여행을 떠날 때 배낭 속에 장자를 넣었다. 돌아보건대 탈과 무의 삶을 살아온 나였다. 내 지나온 삶이 장자의 삶이었다. 장자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무엇일까? 탈과 무와 무위자연이다. 장자를 끌어안으면서 나는 또 다른 탈을 준비한다. 무위자연에서 인간의 삶 그 속으로. 그리고 여름의 끝에 나는 다시 한 사람을 끌어안는다. 이 시대의 영원한 저항의 아이콘이자 우리에게 희망과 미래를 제시한 체 게바라. 천이백 쪽의 방대한 체 게바라의 삶을 따라가면서 나는 잠시나마 행복에 빠졌었다. 2010814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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