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흔 하나인 어머니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 병원에 도착해 15일 동안 기록을 한 혈압수치를 원장에게 주었다. 관리를 아주 잘했습니다. 정상입니다. 두 달치를 드리겠습니다.
집에 도착을 하니 어머님이 형수와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지난 주만 해도 어머니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연락을 받고 도착을 하니 어머니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았다. 이틀 전에만 해도 나하고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의식이 혼미해진 것이었다. 분석에 들어갔다. 원인은 패치였다. 척추협착증 때문에 다리에 통증이 와 이제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 다리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암환자들이 붙이는 패치를 처방해주어 그것을 붙인다. 형수가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다리도 아파 어머니가 강한 걸 붙여 달라고 해서 100밀리짜리를 붙여주었다고 했다. 전에도 100밀리짜리를 붙여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급히 어머니 어깨에 붙어 있는 패치를 가위로 삼분의 일을 제거했다.
한 시간 후, 어머니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점심식사 후 어머니를 휄체어에 태우고 요양사 아주머니와 가을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매점에서 커피를 사 강가에 나갔다. 두 시간 동안 가을 풍경을 구경하고 막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 있는데, 포항의 막내 부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면서 어머니를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O형인 누나와 나, 그리고 포항 막내네 부부는 올라왔고, A형인 부산의 누이네는 바쁘다는 핑게로 올라오지 않았다. 이서방이 물었다.
어머니, 괜찮으십니까?
지난여름, 어머니는 막내네 집에 내려가 3개월 동안 있었다. 막내와 이서방이 지극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셨다. 정이 들대로 든 막내네 가족들. 조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우리 형제를 키우다시피한 외할머니라면서 정성을 다했다.
오늘 집을 나오는데, 현관까지 따라나온 어머니가 뭐라고 했다. 요양사 아주머니가 혹시 못 오더래도 전화는 하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틀니를 교정 보아서 이제 밥 먹을 때 끼고 먹는다고 했다. 어머니, 밥 열심히 드셔야 합니다. 저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그리고 건강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비가 내리는 국수
저 집이 우리 두 사람이 즐겨다니는 단골집이다. 국수 불가마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 빈대떡에 막걸리 한사발을 하고 나온다. 우리는 참새고, 저집은 방앗간이다. 몸을 씻고 불가마에 들어갔다. 뜨거우면서 시원했다. 몸에서 땀이 비 오듯했다. 땀과 함께 내 몸속의 노폐물도 밀려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 나오고 끝까지 버티면 자신들도 곧 사망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죽느니, 나간다! 그래서 장렬하게 전사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땀을 흘리면서 나는 헤밍웨이를 떠올린다. 정말 그렇게 가고 싶다. 어느 날, 더이상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권총을 목구멍 속에 넣고 당기는 것이다.
탕!
빈대떡과 막걸리
아니, 왜 혼자 오셨어요? 빈대떡과 막걸리를 가지고 온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늘 함께 왔다. 혼자 온 일은 없었다. 그 사람, 지금 독일에 가 있습니다. 아 예. 다음달 초에 들어옵니다. 벌써 3개월쨉니다. 아이고, 한달도 못 견딘다고 하던데, 3개월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견뎌지던데요. 그러나 저러나 아주머니, 얼굴이 좀 야위셨는데? 아, 예, 김장한다고 며칠 몸을 무리하게 썼더니 이래네요.
지금 이 사진을 그 사람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보면 군침을 흘릴 겁니다. 그 사람도 이 집의 빈대떡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특징은 담백하다. 종로 5가의 빈대떡처럼 기름 범벅이 아니어서 느끼하지 않다. 보고 있습니까? 아직 안 보네요. 시차가 7시간이라 지금 아침 9시 정도 되었을 것이다.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으면서 욕망과 탐욕을 생각한다. 어느 얼치기 인간은 상고 출신의 신분을 유명 고등학교와 유명한 대학교 상대 출신인 것처럼 세탁해 어느 정치인에게 달라붙어 비서실장까지 지내고 지금은 배후에서 제 2인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 인간의 장인은 전과 5범의 사기꾼이었다. 그 밥에 그 나물이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그를 확고부동하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녀가 싫어하는 두 정치인이 있다. 이유인즉슨, 그들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욕을 했다. 정의와 거리가 먼 독재자요, 우리 국민을 억압 속으로 몰아넣은 절대권력을 휘두른 철통이었다고. 그랬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요즘 변신의 귀재가 되어 가고 있다. 변신도 그런 변신이 없다. 나는 그를 보면서 아, 출세를 저렇게 하는구나! 권력을 잡기 위해 저렇게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세탁을 하는구나! 그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그 사이에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박사와, 한국의 가난을 몰리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 세계에 알리자고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지난여름, 나는 그에게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썼다.
1. 친일파
2. 유신독재에 부역한 자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나
나는 한번도 욕심을 낸 적이 없다. 탐욕하고는 또 거리가 너무 멀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1인칭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3인칭이 들어서 있었다. 한반도 통일에 미쳐 지낸 지난세월, 숱하게 내 메시지를 보냈다. 아마 20여 명이 되지 싶다. 결과는?
20타수 무안타!
이쯤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 간이 배밖에 나오지 않은 이상 정치를 접고 은둔을 하든가, 아니면 누구처럼 토골생활을 해야 한다. 무안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역의 대가는 2014년에 한반도를 통일시킬 지도자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 기사를 우연히 접한 나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그는 사기꾼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이 보낸 편지 한장에 두 남녀의 운명이 하나가 되어버린 그런 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 바로 나다.
아니다!
정말 아닐까?
아니다가 아니고 가치가 있다!
라고 손을 들어준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들은 정치권 밖의 사람들이다. 인정과 실천은 다르다. 해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메시지와 내가 만든 통일 프로젝트를 무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정치권의 넘버 20위 안에 든 사람들 중 내 메시지를 받아본 사람들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모 야당의 여당 인사는 내 프로제트를 카피해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도용인 셈이었다. 그래, 써라, 누구든 실천만 하면 된다. 내가 마지막으로 점찍어 놓은 정치인이 있다. 시간이 나면 그들에게 다시 내 메시지와 포로젝트를 보낼 생각이다. 누구처럼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자리를 구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읽고 머릿속에 천지가 뒤흔들릴 뇌성과 벼락이 치면 나에게 연락을 하라. 기꺼이 동참을 해 기쁜 마음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초석을 놓는데 내 존재를 걸겠다.
가자, 일상의 속으로
빈때떡은 떨어졌고, 막걸리도 빈잔뿐이었다. 생각도 멈추었다.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늘 혼자다. 홀수는 외롭다. 취기가 내 몸을 감싼다. 취하면 뭐하나? 고기를 사먹나? 고기를 사 먹으면 또 뭐하나? 그 다음은 자나? 하긴, 잠이 턱없이 부족한 요즘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는 게 아니다. 당장 지하철을 타야 한다. 가자, 하고 가방을 매고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카드 대신 현금 일만 원을 주었다. 빈대떡 7천 원, 막걸리, 삼천 원, 그래서 합이 1만 원. 주중이고 비가 내리고 있어, 손님들이 없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그 다음은 모른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벌리고 잠에 떨어진 것이었다. 얼마를 갔을까? 카톡!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보니 구리였다. 옆지기였다.맛이 있었어요? 옆지기는 아직 카톡을 사용하고 있다. 돌아오면 텔레그램을 설치하라고 할 것이다. 아나, 우리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카피해 분석을 하는지. 이명박 때 숱하게 당해보아 그 후유증으로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면 절대 받지 않는다.
이상하게 오늘 먹은 빈대떡은 기름 냄새가 나더라, 담백하지 않고. 도봉산에 3천 원짜리 칼국수집에 손님들이 미어터진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고, 그리고 깨끗하다. 박리다매 작전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주방장이 바뀌고 그 자리에 오십대 아주머니들이 주방장 노릇을 하면서 내놓은 칼국수는 비리고 느끼했고, 그리고 양도 형편없이 줄어 있었다. 나는 카운트를 보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팔면 장사가 안 될 겁니다. 맛도 사라졌고, 느끼하고, 그리고 양도 줄었고, 서비스 정신도 사라져 아마도 옛날 주방장을 다시 모셔오지 않으면 손님님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하지 않을 겁니다.
60킬로이면 나보다 안 나가네요. 큰일났네!
뒷이야기-어머님이 준 아몬드를 너무 먹었나,지하철을 내리는데 배 안이 꾸르르 전쟁을 하고 있었다. 수상했다. 한두 번 당해본 일이 아니다. 설사는 외상이 없다. 변비환자들이 좋은 점은 급할 일도 없고, 그리고 팬티에 변을 쌀 일도 없다. 나와야 싸지. 장이 나쁜 설사꾼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설사만 만나면 단거리 선수가 된다. 빠른 것은 비행기만이 아니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차만큼 빠를 수가 있다. 들어왔는데 바지의 허리끈이 잘 열리지 않았다. 이런 지랄이 있나! 아웃도어 가게에서 바지를 쌌을 때 덤으로 준 혁대가 빠져 나오지 않고 사람 애를 태우고 있었다. 변은 이미 항문을 빠져 나와 지상에 토하기 삼 초 전이었다. 에이, 하고 당기면서 잽싸게 걸터앉았다. 성공이었다! 원인은 술이다. 날마다 마시는 술이 나를 설사꾼 회원으로 만들고 있다. 당신, 건강이 걱정됩니다, 라는 메시지가 카톡을 통해 날아왔다. 여기는 화장실 안, 방금 성공적으로 쌌음 오바! 20141128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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