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화두

자본주의의 미래

오주관 2015. 4. 5. 17:17

 

 

노동과 책 읽기

지금의 내 이름은 천만근이다. 그만큼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 어제까지 40여 일, 지하에서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했다. 좋았던 일은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 것이다. 뷔페식 식단을 보면 항상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그득했다. 하지만 내 젓가락은 늘 채소와 해조류 그리고 두부를 집었다. 고기를 집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반찬을 포식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냉면과 고기가 있으면 냉면을 집는다. 고기와 쌈도 마찬가지다. 채식위주의 식단을 보면 침이 흐르지만 육접이 흐르는 고기를 보면 저걸 한번 먹어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없다. 고기를 찾는,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사람들은 나의 식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정말 궁금한 사람에게는 사자와 말을 등장시켜 짧게 설명을 해주곤 한다.

 

 

김씨, 고기만 먹는 사자와 호랑이가 순간적인 힘은 좋지만 그들이 몇 미터를 뛰는지 아십니까? 200미터 이상을 못 뜁니다. 그 이상을 뛰면 사자와 호랑이는 심장이 터져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단거리 주자이지 장거리 주자는 아닙니다.

 

김씨, 말을 보십시오. 말이 언제 고기 먹는 꼴을 봤습니까? 말이 먹는 것은 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은 천리를 달립니다. 그래서 천리마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풀만 먹는 말이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까? 말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몸이 날씬합니까? 그리고 살결을 보십시오,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 않습니까? 여자로 치면 8등신 아닙니까?

 

결론은, 인간은 순간적인 파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게 가는 지구력입니다. 그래서 체격이 아니라 체력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삼시 세끼에 노동이 뒤따라 몸이 제법 튼튼해졌다. 팔뚝은 아톰으로 변해 있다. 홀쭉했던 배도 조금 나왔다. 몸무게는 재어보지 않았지만 65킬로 정도 나가지 싶다. 12시간 노동 가운데 나에게 찾아온 휴식시간은 2시간 30분. 그 달콤한 시간에 나는 독서에 힘을 쏟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치고 책읽기에 몰입을 했다.

 

활자라고는 매트로밖에 안 보는 정씨가 어느 날부터 시간만 나면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존재가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자기가 대장이었는데, 내가 나타나면서 그 대장자리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정씨만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사람들과 사장까지도 그랬다. 심지어 사장은 나를 보면 고개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했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거나 아니면 의식이 있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농경사회에서의 갈등의 불씨

농경사회에서 갈등의 불씨는 지주와 소작농이었다. 지주의 땅을 붙여먹는 소작농들은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 힘들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지주들은 늘 포식을 하면서 살았다. 부산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생탁이라는 막걸리 공장과 닮은꼴이다. 사장자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20명이 넘는데, 그들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일 년에 2억이 넘는 돈을 받고, 일요일도 없이 죽어라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100만 원 안팎의 돈으로 가정의 생계를 져야 하는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다. 부산의 명물인 돼지국밥에 생탁을 마시면서 한번이라도 생탁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본 사람들이 있을까? 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농사를 지을 농부는 많다. 그렇게 되면 살맛나는 사람은 지주밖에 없다. 지대도 올라갈 수밖에 없고, 반대로 농부의 몫은 그만큼 작아질 수밖에 없다.

 

 

 

산업화시대의 갈등의 불씨

지주와 농부가 자본과 노동자로 이어진다. 그리고 탈산업화시대에 와서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그런데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는 자본가도 불안하고, 반대로 돈을 너무 적게 버는 노동자도 불안하다. 전자는 이 달콤한 축복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늘 존재를 찍어 누르고,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이 망할 개떡 같은 세상을 갈아엎을 혁명가는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날까, 하고 혁명의 불씨를 가슴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국부론, 자본론, 21세기 자본, 자본이 가지고 있는 17가지 모순의 핵심주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토마 피케트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이 가지고 있는 17가지 모순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다르면서 같다.

 

그들이 자본을 풀어나가고 있는 출발지점은 같다. 하나는 이윤이다. 이윤이 없으면 장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윤이 없으면 식당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기업도 문을 닫을 것이다. 이윤이 없는데 수출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가 자본의 축적이다. 돈을 벌면 저금을 한다. 더 많은 자본을 축적시키기 위해. 그래서 자본이 가지고 있는 양대 산맥은 이윤과 축적이다. 이 두 핵심은 그리고 자본이 가지고 있는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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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워린 버핏의 통 큰 기부

우리는 종종 기사를 통해 본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이 자선단체와 자신들이 만든 자선단체에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를 하고 있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넘쳐나는 부자들이 많은데, 왜 그들만 기부를 그렇게 많이 할까? 인격이 닦여서? 1%가 아닌 99%가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한 채 잘 살아야 된다는 휴머니즘? 그런 각도로 바라볼 수도 있다. 여기 자본이 가지고 있는 17가지의 모순을 쓴 데이비드 하비에 의하면 그들의 통 큰 기부는 일종의 양심세탁이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겁 없이 돈을 벌어도 되는 것일까? 빌 게이츠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워렌버핏은 돈냄새를 맡는 동물적 감각과 점쟁이로 세상의 부를 끌어 모으고 있다. 양심세탁이라는 그 표현, 탁월하다. 돈을 셀 때마다 늘 미안했겠지? 자신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부의 원천은 어디인가? 1%가 아닌 99%다. 99%가 부주를 해서 거부가 된 것이다. 양심 때문에, 경제의 흐름과 그 구조를 꿰차고 있는 그들인지라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나는 다른 각도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왜 그들은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이룬 부를 자기 자식들에게 물러주지 않고 이 사회에 환원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지금 현재가 아닌, 미래의 우리 사회가 어떤 꼴로 변할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 그들의 정신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가 탄생을 하게 되면 그들이 이룬 부는 한낮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뇌관은 복잡하고 위험하다.

 

자본주의는 백척간두의 그 끝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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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들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망할 수 밖에 없다고 마르크스는 예언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반대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생명력이 끈질겨 쉽게 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고 보는 게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잡초보다 더 끈질겨 내일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가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의 둑이 서서히 붕괴되어가고 있다고 그들은 보고 있다.

 

그들은 사적인 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1%와 99%의 세상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1%만 잘 사는 세상이 언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요? 생각을 하면 골이 아파 아예 관심을 안 둡니다. 그리고 관심이 있으면 이 세상이 바뀝니까?

 

이 사람, 틈만 나면 1%와 99%를 편 가르기 하는 것 보면 종북이 맞아? 틀림없이 빨갱이야! 어쨌든 사상이 삐딱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망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종북이나 빨갱이만 덮어씌우면 그날로 생명은 끝이다.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모양 나타는 귀신이 종북이요 빨갱이다. 진실로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이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서의 벽이 허물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무서운 적은 이북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이념이다. 이념과 동서의 벽이 하루빨리 무너져야 한다.

 

어떤 세상이 건강한 사회일까?

너무 간단하다. 이건희와 정몽구가 세세생생 부를 끌어 모으며 사는 세상이 건강한 사회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99%는 쫄쫄 굶으며 살고 있는데 1%들만 배를 두드리며 사는 사회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여보시오, 이건희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데, 너무 그 사람을 비판하면 안 됩니다. 이건희가 살고 삼성이 살아야 대한민국의 경제가 삽니다, 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국민들이 없잖아 많다고 생각한다. 정말 잘못 전달된 경제지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이건희가 빨리 죽어야 한다. 이건희는 살아야 하고, 삼성은 살아야 한다면서도, 삼성그룹의 한축인 삼성전자 서비스 센터의 기술자는 배가 너무 고파 자살을 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배가 너무 고파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한 송파의 세 모녀, 배가 너무 고파 자살을 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의 그 기사의 사망소식을 외면하고 있는 정치권과, 백태의 눈을 한 채 침묵하고 있는 국가의 저 천하태평에 경악을 하지 않는 이 시회가 진실로 건강한 사회는 아닌 것이다.

 

이윤과 축적이 낳은 새끼

자본의 절대동력인 이윤과 자본축적이 낳은 새끼는 바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말이 있듯이, 한번 부자는 영원히 부자다. 반대로 한번 가난은 영원히 가난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자의 대열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에게 희망과 꿈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눈 푸른 선각자들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교회의 빤질이 조용기 목사가 아닌, 할렐루야의 김계화 점쟁이가 아닌, 소망교회의 그 연애지상주의 목사가 아닌, 로마의 교황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 세상의 사제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제들이여, 제발 그대들이 신고 있는 구두에 흙을 묻혀라!

사제들이여,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아픈 그들을 끌어안아라!

 

심지어 그는 자본이, 돈이 우리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악마라고 했다. 악마가 맞다. 돈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있는 무기로 둔갑해 있다.

 

결론은 혁명이다

너무 간단하다. 1%와 99%가 싸우면 누가 승리를 할까? 1%가 이기나? 아니다, 99%가 이긴다. 이순신장군의 필승전법인 사즉생이 동원되지 않더라도 1%와 99%가 싸우면 무조건 99%가 이긴다. 방법은, 간단하다. 99%가 일어나 1%를 갈아엎으면 된다. 너무 간단하다.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을 꿈꾸자!

 

 

뒷이야기-탈산업화 시대에 와서도 자본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은 여전히 자본이다. 자본이 권력 위에 앉아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호령을 하고 있다. 그것들이 바로 자본이 엎어질 수밖에 없는 불씨들이다. 그것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21세기가 저물기 전에. 그러려면 내 자신부터 탈을 시켜야 한다.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새가 탄생할 수 없듯이, 나 자신을 파괴시키지 못하면 창조는 없다. 고로, 파괴는 창조다!201541도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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