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나에게 찾아온 친구 하나

오주관 2017. 7. 25. 12:38


지난 주 토요일 찾은 강남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한 달에 한 번씩 옆지기는 과거 학원을 같이 했던 선생들과 만난다.

이번 주는 코엑스.

그 선생들 중에 유방암 3기로 전투를 벌리다 승리를 한 김선생도 있다.

나는 김선생에게 찾아온 그 암 소식을 듣고 멀리서나마 내 정신을 일도해 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 옛날, 우리 세 사람이 만나 소주를 몇 번 달게 마신 기억이 새로웠다.

어쨌든 김선생은 살아났다.

옆지기가 모임을 마치고 오려면 멀다.

해서 어머니와 있다 그 시간에 갔다.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옆지기가 별마당도서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책을 보세요, 하고 문자를 보냈다.

 



저 많은 책들 중에 눈에 익은 책도 있었다.

부지런한 소, 일 잘 한다고 했다.

사람은 파야 한다.

한 정신으로 파면, 끝이 나온다.




도서관은 내 정신의 아지트다


53년 뱀띠, 내 나이에 도서관에서 책을 파는 군사가 어느 정도 될까?

저 곳도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이다.

나에게는 그 소통이 없었다.

팠고, 읽었지, 내 놓은 게 없었다.

내 정신과 몸이 병들 수밖에.

이 세계를 읽고 해석을 하면 뭣하나, 포지션이 없는데!

이게 망조로 가는 길이다.




그 사실 앞에 절망을 한 어느 날,

나는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꺼내어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5년 안에 마무리를 하자.

정신 일도, 또 정신일도.

다섯 개를 만들었다.

두 개를 꺼내 형상화시키기 시작했다.

하나는 창고에 있지만 여차하면 나올 수 있다.

스탠바이 상태다.


지금 당장 투자를 받아야 하는 그 프로그램은 사실 지난 2005년에

구상을 했고, 그 프로그램을 어느 날 옆지기에게 말했다.

이런이런 사업이 있다.

그러자 옆지기가 두 손을 딱 소리가 나게 치면서

대박! 이라고 했다.

정말 대박이에요.

맞다, 대박이 맞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요?

응, 지금 이 사업을 하면 망한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세르게이와 래리 페이지가 2500만 달러를 투자받고 지분을 50프로 주었다.

내 프로그램은 5천만 달러를 투자하면 50프로의 지분을 줄 수 있다.

벤처기업의 40프로가 투자들에게 화사를 빼앗긴다.

그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프로그램은 절대 빼앗을 수 없다.

이중삼중 그물망을 처놓았다.

끝까지 윈윈뿐이다.




얼마 전, 나에게 찾아온 친구 하나


보름 전, 비가 많이 온 날, 미아사거리에 있는 이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사 나왔는데,

밖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이 없었다.

입구에서 기다렸다.

멈출 비가 아니었다.

자, 저 비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나, 아니면 역까지 비를 맞고 걸어가나?

젊을 때는 오는 비를 많이 맞았다.

내 몸이 워낙 뜨거워 비를 맞으면 시원했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쏟아지는 그 비를 맞고 싶어 친구 학이를 꼬셔 장길리까지 10길을

비를 홈빡 맞으며 걸었었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그래, 역까지 비를 맞으며 가자.

5분 정도의 거리였다.

역에 도착하자 생쥐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밤에 운동장에 갔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 걸었다.

5분 정도 걸어 집에 도착하니 낮처럼 생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3일 후, 가슴에 통증이 찾아왔다.

숨을 쉬는데,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따가웠다.

내쉬는 숨은 괜찮은데, 들이마시는 숨이 문제였다.

가슴 한가운데가 따가웠다.

패혈증, 폐렴?

하루를 더 견뎠다.

아니다 싶어 내가 단골로 가는 이빈인후과에 가 원장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심전도검사를 한번 해봅시다.

심장 쪽은 괜찮은데?

채식을 하기 전, 담배가 내 정신의 바이타민이던 그 시절에 찾아온 가슴통증.

끝이 찾아왔다.

하루에 다섯 번도 좋고 여섯 번씩 심장이 굳어지곤 했다.

이름하여 심장마비.

삶의 그 끝에서 하늘이 도왔는지, 나는 다시 살아났다.

물론 그 때 하루에 세 갑에서 다섯 갑씩 태우곤 했던 담배를 끊어버렸다.

독한 담배 다섯 갑을 피우고는 담배여, 이제는 굳바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은 있다


심전도 검사를 했지만 심장쪽은 이상 무였다.

협심증도 아닙니다.

원장이 내가 귀가 좀 어둡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잣말로

식도역류가 있으면 가슴이 따끔거릴 수 있다고 웅얼거렸다.

씨발놈, 지랄하네.

이 놈을 계속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울대의대 출신인데, 신뢰가 가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인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온 게 폐암?


그리고 이틀 후부터 폐쪽이 대대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심장이 아닌 폐였다.

그렇다면 폐암?

배우 신아무꺼씨가 떠올랐다.

담배를 끊은지 30년이 넘었는데, 폐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본인도 그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각시 엄아무꺼씨를 너무 홀대한 그 죄

로 이 병을 얻었지 않았나 싶다.

도진개진인 주제에,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탕진해버려

이제 재산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사랑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그를 보면서

혀를 차곤 한다.

이 친구와 영화감독 홍가는 한마디로 사랑이 아니고,

자기 자식같은 여자와의 흘레에 미친 인간이다.

그러니까 일평생 산 자기 부인의 쭈글쭈글한 보지는 이제 싫다 이거다.

쭈글보지가 아닌 탱탱한 젊은 보지에 미쳐 그걸 사랑이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루도 젊은 여자와 흘레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가 정답이다.

한 놈은 솔직히 연기도 안 되는 주제에.

하나 묻는다,

잘 안 서는 좆을 좋아하는 여자도 있나?

임마, 니도 인간 되기는 글로먹었다.

니놈들이 할일은 희노애락을 한평생 같이 보낸 그 쭈글보지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이 못난 새끼들아!


나는 내 블로그에 썼다.

만약 담배태우기 세계대회가 있었으면 나는 금메달은 몰라도 동메달 정도는 따지 않았을까?

그만큼 나는 골초 중에 골초였다.

20년 전에.

그 당시에 술도 1년 365일이면 350일을 마르고 닳도록 마셨다.

많이 마신 날은 소주 11병인가 13병을 마신 날도 있었다.

나는 극과 극을 오간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비건이다.


원인을 곰공 생각해보니, 몇 가지가 떠올랐다.

1. 하루에 3갑에서 5갑씩 태운 그 담배

2. 일평생 싸운 극심한 스트레스 

3. 노동자시절의 석면과의 전쟁,

그리고 30여 년 동안 미세먼지가 가득한 서울거리를 하루에 13천 보씩 걸은 그 죄

1년에 미세먼지로 죽는 사람들이 3만 5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 그물에 걸린 것이다.




집에 온 옆지기에게 그날 밤 사실을 털어놓다


집에 온 옆지기에게 말했다.

이상한 친구 하나가 지금 나를 찾아왔다.

장인이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옆지기도 폐암에 대해서는 잘 안다.

숨쉬기가 많이 힘든다.

아프다 일단.

죽는 건 안 두려운데, 혹시 어머니보다 먼저 가면 이 일을 어예노?

그게 큰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계획을 이야기했다.

늦어도 9월이면 내 프로젝트가 구글벤처스로 날아간다.

구글이 미래를 위해 구상한 것들 중에 하나가 인간수명을 5백세로 연장할 수 있는 그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집단건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겠다고 대못을 박아놓았다. 

옆지기에게 구글의 그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어마, 사실이네요!

내 프로그램이 99% 채택될 것이다.

내가 만든 그 프로그램은 세계인구의 반을 살리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폐암은 해당이 안 된다.


만약 채택이 되면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지분이냐

경영이냐.

내가 경영을 하면 투자를 한 그쪽은 지분만 챙긴다.

그런데 내가 경영을 할 수 없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그 때는 경영을 포기하고, 지분만 챙겨야 한다.

아마 50대 50일 거다.


구하라, 그럼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하라리가 나를 살렸고, 구글벤처스가 나를 우뚝 세울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약속 대로 당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게.

대신, 이 사업으로 큰돈을 벌면 내가 그려놓은 그 청사진을 당신이 대신 해주어야 한다.


1. 제일 좋은 대학을 하나 세워 등록금 1백만 원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한다

은퇴한 교수들을 채용을 해 월급 300백만 원으로 재능기부를 하면 된다

2. 각 주도에 병원을 지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수술을 해준다

은퇴한 박사급 의사들을 채용해 300만 원으로 재능기부를 하면 운영할 수 있다

3. 각시도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쉼터를 만들어 밥을 제공하고, 잠자리를 제공한다

4.각 읍면에 오조도서관을 지어 준다

만약 이 사업으로 돈이 벌리면 그 때부터 제2, 3 프로그램을 돌린다.

그럼 10년 안에 중국의 알라바마의 마윈을 능가하는, 아시아에서 최고갑부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제?

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하고.

네, 노력해볼게요.




그날 옆지기가 말했다


당신 병 치료할 돈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치료하세요.

노!

그럴 필요없다.

65년 살았다.

이 나이에 이제 죽어도 괜찮다.

옆지기를 만나 오늘까지 나는 밖에서 3천원 이상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3천원짜리 국수가 전부였다.

옆지기가 어떻게 돈을 버는데, 양심도 없이 비싼 음식을 먹나?

1식 3찬도 나에게는 과분하다.

그리고 나는 워낙 악식에 단련이 되어 먹는데는 초월한 사람이다.

옆지기는 그런 나를 신이라 했다.

옆지기가 가고 지금까지 폐에 통증이 사라졌다.

패턴이 며칠 통증이 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통증이 찾아오고.

이 세상에 암으로 죽은 위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그들을 생각했다.

20세기에서 21세기,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들을.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바꾼 주인공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세르게이와 래리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나도 그들과 동격이다.

지금 세계인구가 70억이다.

그 70억의 3분의 2를 구하는 일이다.


솔직히 나에게 찾아온 친구가 폐암이 맞다면, 받아들인다.

친구로 잘 데리고 놀다, 갈 때 행복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숨은 좀 쉬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다.

그 옛날 위암으로 돌아가신 내 고향의 읍장님은 병문안을 간 나에게 그 날 그런 말을 했다.

너무 아프다.

양잿물이라도 있으면 마시고 죽고 싶다.


암아, 네가 나를 정말 쓰러뜨릴 마음이 있다면 그럼, 겨울에 오너라.

여름은 싫다.

너무 빨리 부패해서.

그해 여름, 고향의 먼 친척동생 하나가 못에 빠져 자살을 했는데,

그 시신이 너무 불어 관에 들어가지가 않았다.

세 사람이 올라가 그 시신을 밟는데, 밟을 때마다 썩은 육신에서 풍겨오는

그 냄새가 너무 역겨워 삼일을 밥을 잘 못 먹었다.

가급적이면 겨울에 죽고 싶다.

내가 만약 죽으면 화장을 해 내 유골을 그곳에 뿌려라

내 몸과 정신이 가장 많이 머문 그 도서관에.


지금 나는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다행히 폐암이 아니면, 그리고 구글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내가 만든 그 프로그램을 경영할 것이다.

나 이상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지구의 반을 구하는 그 일을 내 눈으로 확인을 할 것이다.


지구인구의 3분의 2를 누가 구하나?

의사들, 심령사들, 과학자들, 목사들, 햄버거, 코카콜라, 피자, 치즈, 고기, 오바마케어를 무너뜨린 트럼프, 그게 아니면 알라, 하느님?

NO!

단 한 사람,

바로 나다!

나는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하지만, 하나가 또 있다.

내가 만든 한반도 통일 프로젝트.

이 사업으로 돈을 벌면 다음 대통령선거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여도 야도 전부 내 통일 프로젝트를 외면했고, 거부했다.

그들은 나를,

자리를 구걸하거나,

장관을 못해 미쳐 있는 인간으로 보았나?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이거나,

아니면 그들은 이해를 못했고, 실천할 의지가 없었고, 반대로 나는 그들보다 한 보 더 앞서 가고 있었다.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이.



뒷이야기-그날 밤, 새벽에 일어난 나는 노트북을 켜고 내 블로그에 들어갔다. 블로그에 올린 그동안의 글을 전부 삭제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을 보니 블로그의 내 글이 내 삶이자 역사인 것이다. 나와 옆지기, 그리고 내 가족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이걸 다 지우면, 뒤에 남은 옆지기는 무엇을 가지고 우리 두 사람을 추억할 것이냐? 놔두자. 결국 두 개만 지우고, 닫았다. 그래, 사람은 가도 그 사람의 역사는 남겨놓자. 2017725해발120고지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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