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복실이에게 반해버렸다.
그리고 복실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복실이와 일주일을 같이 보냈다.
복실이와 보내는 동안,
내 뇌는 착실히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날 아침,
그 계단에 주저앉은 나는 119에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내 옆에는 나를 보고 놀라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하고 있는 복실이가 있었다.
복실이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내가 처해 있는 상태를 아는 듯했다.
개껌에 분풀이를 하고 있는 복실이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이주일에 한 번씩 복실이를 보기 위해 간다.
옆지기가 복실이를 데리고 나오면, 앞장을 선 복실이는 당당하게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아파트를 나와 길 건너편의 나를 발견하면 바로 무장해제가 된다.
집에서의 우로 굴러, 좌로굴러, 가만히 있어!
라는 구호는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옆지기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다가 뭐로 빠진다고,
말을 잘 듣고 있던 복실이가,
옆지기만 집에 오면 무장해제가 된다.
아파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무슨
껌딱지처럼 옆지기를 붙잡고 산다.
장모가 있는 방에 감히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복실이가
옆지기만 있으면 겁도 없이 냉큼 방으로 들어와 옆지기에게 안겨붙는다.
옆지기가 아파트를 나올 때까지 장모님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준다는 복실이.
인터넷에 주문한 개껌을 주자 저렇게 씹어먹고 있다.
이제 5개월인 복실이, 며칠 전 어금니 하나가 빠져버렸다고 한다.
이갈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마 스트레스가 좀 있을 것이다.
우울증도 슬금슬금 찾아오겠지.
말은 못 해도 속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왜, 아저씨가 안 올까? 왜?
복실아, 아저씨, 보고 싶지?
옆지기가 나간다고 저 난리불루스를 추고 있다
말은 하지 못해도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게는 맹목적으로 충성을 한다.
복실아, 니하고 같이 살기 위해 아저씨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스트레스를 안 받고, 넓고 따뜻한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복실아, 답답해도 참아야 하느니라.
참고 인내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
네와 살 장소, 집과 뜰 그리고 오두막 등등은 이미
설계가 끝난 상태이다.
그러니 호흡을 길게 해야 한다.
복식호흡으로 생명의 시간을 늘려 나가야 한다.
알았나, 이놈, 복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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