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 코로나19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다중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3, 4월 두 달 동안 나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집을 나온다. 그리고 그 때부터 무작정 걷는다. 언제 서울로 돌아갈지 예정이 없다. 내일 당장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곳에서 사전투표도 했고, 그리고 전 세계의 소식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영국, 일본,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들이 이번에 닥친 코로나19 때문에 국격이 형편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경제 문제와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선전국이 선도하고 있는 경제구조나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근본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의 개발은 멈추어야 된다. 더 이상의 인구폭발을 막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산업의 재구조조정이다. 지구를 망치고, 자연을 망치고, 삶을 망치고, 그리고 기후변화에 기름을 끼얹는 경제개발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전 세계가 이 문제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 문제에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부의 독식, 그리고 소득의 불평등을 대변하고 있는 부익부 빈익부의 그 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댄 채 지혜를 모아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우리 인간이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1. 탈
2. 혁신
3. 배려
4. 상생
사고의 탈이 가장 중요하다. 머릿속에 박혀 있는 그 지식을 깡그리 태워버려야 한다. 낡아빠진 지식으로는 75억 전 세계인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가장 먼저 탈을 해야 한다. 그 다음이 혁신이다. 혁신만이 살길이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나와 세계를 먹여 살려야 한다. 세번째가 나와 남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배려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상생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씨줄날줄로 얽히고설켜 있다.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도 타격을 입는다. 노동자가 없으면 사장도 없다. 고로 상생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그나마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당하면서 그 네 가지를 가장 확실하게 실천을 한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마스크를 양보하고, 식료품과 휴지 등등을 사재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와 국민은 하나가 된 채 자가격리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는 우리와는 딴 세계였다. 식료품과 화장지를 먼저 사기 위해 이웃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싸우고 약탈까지 서슴치 않은 몇몇 선진국의 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아, 선진국이라고 하는 선진국이 결국 선진국이 아니구나. 선진국은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꽈리처럼 부풀어오른다. 대한민국이 어느새 세계의 중심국가로 진입을 했구나. 탄허스님이 일찍 예언을 했다.
세계의 중심은 대한민국
21세기가 되면 세계의 중심은 이곳 동북아가 된다.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 그런데 동북아의 중심은 우리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그 예언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된다.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은 위대하다. 비록 나라는 작지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수준 높은 질서와 국민성은 세계를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성숙하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북유럽의 몇몇 나라들을 보라! 정부와 국민은 하나가 아닌 분열로 나누어져 있다. 정부는 정부 대로, 국민은 국민 대로 우왕좌왕인 채 공포와 불안에 떨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곳에는 나만 있고, 이웃은 없다. 그래서 각자도생하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보여준 그 처절함은 야비규환 그 자체였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마스크조차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옷을 발가벗은 전 세계를 보고 전 세계인이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안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이념과 경제시스템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제 삶의 공식이 바뀌어야 된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걷기와 책 읽기, 그리고 명상
하루에 두 번씩 나만 알고 있는 조용한 바닷가 자갈밭에서 명상을 한다.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그리고 20여 km를 걸으면서 송악퇴치운동에도 열심이다. 두 달 동안 860Km를 걸었다. 내 몸을 보고 간디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베트콩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싯달타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봐도 말라 있다. 몸에 비계는 없고 살코기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 소나무와 삼나무 50여 그루를 살렸다. 손으로, 나무 작대기로, 아니면 돌을 손에 쥐고 소나무와 삼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송악나무라는 기생충과 사투를 벌리면서 땀을 쏟곤 한다. 상생을 모르는 기생충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오늘은 접는 톱을 하나 사 소나무나 삼나무의 숨통을 죄고 있는 송악나무를 댕강댕강 썰어 두 토막을 내어야겠다. 서귀포여고 앞 정류장 앞에 소나무가 두 그루 있고 삼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중 두 소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송악나무를 돌로 탕탕 치며 30여분 사투 끝에 토막을 내었다.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송악나무는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고, 소나무는 싱싱하게 숨을 쉬고 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소나무 두 그루는 나에게 인사를 한다.
"형님, 하영 고맙수다!"
소나무와 삼나무를 칭칭 감고 있다 죽어가고 있는 송악나무 잎들은 쥐어짜는 목소리로 마지막 절규를 한다.
"형님, 하영 밉수다!
이상한 경험
그 날 수요일 오후 어디서 온 정찰기인지는 몰라도 낯선 정찰기가 굉음을 내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일주일 전, 저 곳에서 점심을 먹고 10여 분 낮잠을 자면서 핸드폰의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13분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14분이었다. 이상했다. 1분을 잤을 리 만무인 것이다. 하늘에 걸려 있는 태양은 서쪽으로 제법 자리이동을 해 있었다. 가방을 메고 젊은 커풀에게 다가가 시간을 물었다.
4시 15분입니다.
내 핸드폰의 시계는 1시 1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3시간이 비어 있었다.
나는 수요일 그 날의 그 불가사의를 아직도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계에 갔다 왔다고 하니, 집사람은 이상하기는 해도 아니라고 했다. 외계에 갔으면 본 게 있지 않겠어요? 맞는 말이다. 본 게 없다. 그래도 수요일에 본 저 낯선 정찰기가 그냥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분간 관찰자로 남아 나를 관찰하고, 내 사업을 관찰하고, 그리고 이 세계를 심도 있게 관찰하며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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