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10시 30분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집사람은 인도의 명상단체에서 하는 중요한 명상수업이 있다며 혼자 가라고 했다. 장모를 닮아 한번 꽂히면 요지부동이다. 오늘 하는 명상이 백만 원짜리다. 돈은 사촌동생이 내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노 쌩큐해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본캐와 부캐였다. 우리 두 사람에게 무엇이 1번이고 무엇이 2번인지 귀신님이 우리 각시에게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명상이나 종교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삶의 질서가 망가진다.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망해가는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상은 뭘까?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명상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명상은 자신을 바라보면서 정신을 정화시키고, 그리고 삶의 동력에 기름을 넣는 것이 아닐까.
걸어서 서귀포월드컵에 도착하니 오늘 축구시합이 있는지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끌법적하다. 지하에 롯데시네마가 있다. 표를 끊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의 경제를 갈라놓았다. 뜨는 경제와 지는 경제가 있다면 극장은 지는 경제다. 거실이나 방에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밀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영화관에 오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잠에 빠진다. 그래서 1/3은 놓쳐버린다. 오늘은 미나리를 보기 위해 정신을 일도하면서 스크린을 붙잡았다. 다행히 졸지 않았다. 그 대신 미나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네의 삶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무대만 미국일뿐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한국의 김씨 이씨 오씨네의 삶이었다. 가족을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손에 쥐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남편과, 남편의 그 이상에 반기를 들면서 현실에 안주하기를 갈망하는 부인과의 싸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부부의 싸움이 일상인 미나리. 그래도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위안을 조금 얻은 것은 미나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다.
세상은 결국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희망과 절망으로. 오늘의 삶이 절망이라 하더라도 희망을 손에 쥐고 놓치 않는 한 내일 아침 어둠을 물리치고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희망도 떠오를 것이다. 희망 다음에 오는 것이 절망이라면 누가 오늘 잡고 있는 희망을 계속 움켜쥘 수 있을까?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 같은 불굴의 정신력이면 아메리카 드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결론은 우리 인간이(一切唯心造)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따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미나리가 미국에서 통한 것은 보편성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우리보다 조금 더 빨리 미국이라는 거대한 황무지를 찾아 삶을 개척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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