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내가 사는 길

오주관 2021. 3. 12. 12:51

 

범을 피하니 사자가 나타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했다. 허리가 아파 집중치료를 했더니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땅바닥에 찍은 왼쪽무릎이 계속 시큰거리면서 아파왔다. 한의원에서 제일 먼저 부황을 떠 피를 뽑고 침을 맞았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니 사진을 또 찍어보자고 했다. 찍은 결과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골주사를 세 번 정도 맞으라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혈압이었다. 손목을 넣고 재면 보라는 듯이 190-120이 나왔다. 간호사가 입을 벌린 채 아, 했다.

 

 

최악의 상태가 찾아왔다. 이게 다 홈페이지 때문이다. 아니 홈페이지를 만드는 담당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라는 골짜기에 빠져 지내고 있다. 벌써 두 달이다. 처음에 홈페이지를 만들 때도 애를 먹이더니 이번에도 상동이었다. 숨을 날숨 들숨 쉬며 이 고통의 늪에서 빠져 나갈 방법이 뭘까, 하고 연구를 했다. 옛날 같았으면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육두문자가 여러 번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욕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망할 업체를 선택한 내가 잘못이다. 그리고 더 괴로운 게 홈페이지를 만드는 회사는 서울 마포에 있고,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다. 저 친구들이 내가 제주도에 있다는 것을 알면 더더욱 거북이걸음으로 나를 말라죽이지 싶다.

 

 

일단 나에게 닥친 급한 불부터 끄자 싶었다. 흥분하고 화를 내면 진다. 진리다. 아무리 내가 갑이고 저쪽이 을이어도 갑이 흥분을 하면 을도 따라 흥분을 하면서 이성을 잃을 수가 있다. 계약서에 언제까지 마치겠습니다, 라는 게 없다. 두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세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라고 강변을 하면 할 말이 없다.

 

관세음보살도 읊조리고, 명상도 하고, 허리가 아픈데도 엎드려 팔굽혀펴기도 하면서 이 스트레스 골짜기를 빠져 나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도 혈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물론 집에서 재면 그만큼 안 나온다. 150-90 정도 나온다. 내 경험에 그 정도 수치는 정상이다.

 

내 노트북을 열면 제작을 담당하는 그 담당자에게 보낸 이메일이 오늘 아침에 보니 열다섯 통이다. 번호까지 매기면서 수정이나 삭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대답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면 달랑 하나 고쳐놓고 2주일은 잠수다. 마침표가 뭔지 쉼표가 뭔지 그리고 띄어쓰기가 뭔지를 모르는 친구였다. 문법이라는 게 아예 없는 동네였다. 그러니 뚜껑이 열릴 수밖에. 프로는 프로다워야 한다. 제작을 의뢰한 사람 마음에 쏙 들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그게 프로고 신뢰라는 게 생긴다. 신뢰와 믿음이 사라지면 그 회사는 망해야 한다.

 

 

내가 살길은?

 

다시 배낭을 메고 올레길 순례에 나섰다. 우선 내가 살아야 한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내가 홈페이지 때문에 혈압이 터져 병원에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채식해도 별 수 없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은 좋다!

 

허리와 무릎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앞만 바라보고 걸었다. 내 안의 나를 비우자!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화를 식히자.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그 뚜껑을 안 열리게 하자.

 

일주일을 책과 씨름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너무 불어 올레길을 못 걷는 날에는 도서관으로 갔다. 서울 마포에 있는 그 망할 회사는 쳐다보지도 말자! 멀티태스킹이 아닌 하나에 미쳐야 한다. 옛날의 그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풍덩, 빠지자 재미가 아픈 나를 어루만졌다. 그래, 책에 미치고, 책에 빠지자. 홈페이지는 당분간 잊자! 두 권을 읽었다. 그래도 한마디만 하자.

 

임마들아,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

 

 

정말 계속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나도 마지막 방법을 꺼낼 거다. 서울 서초동에는 멧돼지 윤석열이만 있는 게 아니다. 그곳 대형로펌에는 내 조카와 사위가 있다. 직원이라고 6, 7명뿐인 콩쥐만 한 회사 정도는 번갯불에 콩 볶듯 골로 보낼 수 있다. 차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합장과 결과부좌를 수십 년 한 내가 그냥 참는다. 그러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 앞에 내놓아라

 

비전문가인 내가 내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50%는 투자를 했다. 레이아웃만 만들 줄 알았지 그 속을 채울 내용에 대해서는 까막눈들이었다. 마침표 삭제해라. 임마, 엄마 밥상. 하고 마침표를 찍으면 안 된다. 키워가면서 먹는다고 했나? 그 꼴이었다. 문법에 문자도 모르는 인간들이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의자를 차지하고 있다. 어쨌든 이제 8부 능선에 와 있다. 어제 마지막으로 고쳐야 되는 부분을 메일로 보냈다. 그 작업만 마치면 이제 홈페이지는 완성이 된다. 그 작업이 끝나야 2번 작업을 할 수가 있다. 어제도 20Km를 걸었다. 그 걸음 끝에 삼매봉도서관에 들어가 남은 페이지를 다 읽었다. 나오기 전 열람실 안에서 팔굽혀펴기를 30번 했다. 나머지는 공원에서 다 채웠다. 

 

프로는 자신의 100%를 태우는 게 아니라 120%를 태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세상을 보라! 조피가 두부 되고 두부가 조피가 되고 있다. 정말 한심하고 우습다.

 

,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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