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민간인 희생자는 최대 25,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4] 한편 진압군은 1,091명 사망하였다. 그리고 10살 미만의 어린이가 희생된 수는 1500명이라고 한다. 30만 제주도민의 1/3이 희생된 것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536>
집사람, 서울에 가다
오늘 토요일 아침 9시 50분 집사람은 이곳 중앙로터리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는 182번 버스를 탔다. 올해 90이 넘은 어머니를 뵙기 위해. 내일 오후에 다시 내려올 것이다. 어머니 몸을 씻겨드리는 일도 있다. 누가 나에게 천사를 보았느냐 물으면 나는 보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집사람이 바로 천사다. 분명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을 텐데 노와 애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짠하다. 나 또한 그 짠한 감정을 감추며 살고 있다.
집사람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나는 가방을 메고 다시 집을 나왔다. 아침에 먹은 거라고는 전날 밤 쪄놓은 고구마 한 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다행히 동네 컴포즈 앞을 지나갈 때 '어이' 하고 부르는 소리가 없었다. 지난 봄, 우리 집 부근에 살고 있는 여든이 넘은 노인분과 그의 집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가방을 매고 어디에 가느냐? 도서관에 갑니다. 나는 이집에 산다. 아 네. 그게 다였다. 통성명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컴포즈 앞을 지나가면 친구분과 차를 마시고 있다 밖을 나와 나를 향해 '어이! 하고 부르곤 했다. 차 한잔 하고 가라는 소리다. 어이를 지나 시청, 중앙로터리, 올래시장, 동홍동 로터리, 서귀포중학교, 그리고 그 옆길로 걸어 정방폭포 쪽으로 걸었다. 추울까 해서 입은 점퍼를 벗어 가방 속에 넣었다. 계절은 11월이지만 날씨는 아직 여름이었다. 오늘 내가 가야할 목적지는 섶섬이다.
돌아오는 길에 컴포즈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를 한잔 마셨다. 어이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나는 이를 닦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텔레비전을 보고는 껐다. 그리고 노트북을 가져와 전기를 연결하고 앉았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오늘 밤 내 생각을 적자. 스웨덴의 한림원은 이렇게 밝혔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
옳게 보았다. 우리 평단은 왜 한강 작가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지 않았을까? 우리보다 외국에서 먼저 한강작가의 소설을 높이 평가를 했고, 그리고 스웨덴의 한림원이 한강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몇몇 인기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역사는 되풀이 된다. 나는 4, 3사건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울하다. 만약 4, 3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진실 앞에 침묵할 수 있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권만 해도 진영논리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곤 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권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김문수, 제주도가 고향인 원희룡, 그리고 한동훈 같은 위인이 정권을 쥐면 우리나라는 계속 진영논리로 갈라져 죽고 죽이는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적은 러시아와 중국이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을 보라! 정치는 사회주의지만 시장은 자본주의가 점령을 하고 있다. 그런 21세기 문명세계에 아직도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주사파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뿐이다. 무지는 죄악이라고 했다. 무지해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불행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대표의 머릿속에 책이 몇 권 정도 저장되어 있을까? 짐작컨대 200권도 안 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고와 언어구사력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존재가 팔랑개비보다 더 가벼운 것이다.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에 취직해서 만난 두 사람. 한 사람은 경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인선이다. 경하는 잡지사에 근무를 하고, 인선은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면서 단편영화를 찍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함께 일을 했고, 경하가 퇴사한 뒤로도 20여 년을 친구로 지낸 사이이다.
어느 날 인선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경하야.
무슨 일이야?
지금 와줄 수 있어?
그녀는 8년 전 제주 중산간 마을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그러다 4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동네에서 목공을 배운 그녀는 목공방을 차려 목기구를 만들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목장갑을 낀 채 일을 하다 그만 그라인더에 장갑이 끼어 손가락 두 개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제주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 봉합수술을 마친 그녀가 친구인 인선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 있는 인선을 바라본다. 인선은 검지와 중지가 잘려나갔고, 이곳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3주 동안 3분마다 한번씩 수술한 중지와 검지에 피가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소독한 바늘로 찔러야 한다고 했다. 피가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 집에 가줘.
언제?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안 그러면 죽어.
누가?
새.
앵무새다.
아마가 아직 살아 있는지 봐줘. 살아 있으면 물을 줘.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가는 고행을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에는 눈이 계속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올레길을 계속 걷는 나와 닮아 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함을 뛰어넘는다. 나의 안과 밖을 연결한다. 그렇듯이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눈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이어주곤 한다. 눈은 그리고 상징성이기도 하다. 아픔이고, 상처이고, 고통이면서 그런 것들을 다 끌어안는 따뜻한 불인 것이다. 그것의 끝은 아마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선과 경하는 계속 눈을 맞으면서 현실과 꿈 속을 오가며 제주 4,3사건을 찾아나선다. 뿐만 아니라 월남전에서 우리 군인들이 저지른 성폭행사건도 나오고, 보도연맹사건으로 떼죽음을 당한 경북지역의 아픈 민낯도 드러난다.
4, 3사건으로 희생된 유골을 찾는 작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제주 4, 3사건은 그래서 진행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정부를 대표해 제주 도민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유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제주도민들 가슴의 멍이 조금 풀렸을까? 명예가 조금 회복되었을까?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 4,3사건은 다시 원위치가 되곤 한다.
이제 작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작별을 하나로 만드는 길은 없을까? 방법이 없을까? 흑백을 뛰어넘는 길은 없을까?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길은 없을까? 있다! 그것은 하나, 탈이다. 우리 머릿속에 굳어 있는 사고를 과감하게 파괴시켜야 한다. 그리고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흑백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제주도민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4, 3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한강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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