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하느님, 시원하시지요

오주관 2008. 1. 20. 01:49

  

 

 

 

 

하느님, 제가 잘못된 사람이면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범신론자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저는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이야기

아마 이십 후반 때의 일이지 싶다. 그때의 나는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해서 나는 배낭 하나 울러 메고 길을 떠났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나는 띠가 길 띠다. 길 위가 내 현주소다.


12월 깡추위가 길 위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얼음 밭이었다, 길은. 그래도 걸었다, 앞만 보고. 가다 너무 배가 고파 어느 민가에 가 도움을 청했다. 마실 나온 아주머니들이 몇 분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잠시 후, 밥상이 들어왔다. 쌀밥 한 그릇, 김치와 막장. 시금털털한 막장. 하지만 시원했고, 달았다. 막장을 두 그릇 비웠다. 배가 그득했다.


예를 다하고 그 집을 물러났다. 그리고 걷고 걸었다. 통행금지가 있을 때였다. 밤 10시 30분. 깜깜했다. 다리도 아팠고, 이제 더는 갈 수 없었다. 무전걸식을 하겠다고 집을 나선 나에게 돈이 있을 리 만무. 여관에 가자니 돈이 없었다. 길바닥은 얼음 밭이었다, 이차선 국도.


스톱, 하고 중얼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에 빛 하나가 내 눈을 찔렀다. 교회였다. 아,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찰이든 교회든 종교의 간판을 단 곳이라면 스물 네 시간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교회를 본 순간, 나는 ‘오늘 밤 내 육신을 눕힐 곳은 저기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다가갔다. 배꼽 높이의 문. 열고 들어갔다. 교회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교회 옆 목사관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왔다. 쉼 호흡을 한번 한 나는 ‘계십니까?’ 하고 불렀다. 문이 열렸다. 한눈에 목사로 보였다. 그 옆에는 부인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옆방 문이 열렸다. 아들이었다. 이십대 십대.


나는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는 하룻밤 자고 갈 수 없습니까? 라고 물었다. 목사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무전여행을 합니까?’ 시대가 다르면 여행도 달라야 하나. 나는 아, 목사님이 내 신분이 불분명해 이러구나. 그래서 다시 한번 ‘제 주민등록증을 보여드리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말은 ‘여관에 가보십시오.’ 그때 ‘아이, 추워, 빨리 문 닫으소.’ 라고 옆지기가 보챘다.


나는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다. ‘목사님, 그렇다면 추위라도 피하게 교회 안에 들어가 있다 가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단호했다. 나는 다시 부탁했다.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했다. “예, 알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교회를 나왔다. 


다시 길. 걸으면서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이 반짝반짝 빛났다. 바로 그때 야마가 돌았다. 그래, 이대로는 못 가지, 암, 이대로 갈 내가 아니지. 돌아섰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교회로 다가갔다. 아직 불빛이 있었다. 명화극장을 보고 있겠지, 따뜻한 방 안에서.


씨발, 하고 중얼거리며 교회 안에 들어간 나는 조심스럽게 교회 문을 열었다. 문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조용하게 열렸다. 안에 들어온 나는 허리끈을 풀었다. 희미했지만 중앙이 보였다. 문을 열면 바로 밟을 그 자리에 퍼질러 앉은 나는 끄응 배에 힘을 주었다. 나는 변비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돌을 삼켜도 소화를 시키는 사람이었다. 해서 배에 힘만 주면 골미가 빠지듯 똥이 술술 빠져나왔다.  끄응, 끙. 두 무더기. 정신이 맑아져왔다. 개운했다. 뱃속은 허전했지만 마음은 시원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느님, 시원하지요.’   

 


뒷이야기- 그래도 한국 교회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정신이 맑은 목사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념과 믿음이 뭘까. 경계가 없는 사람이 진정 자유인이다. 경계를 두고 있으면 그것은 속인이다. 속물이다. 속물이 나를 구할 수 있을까. 속물이 타인을 구하고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나를 죽이고 타인을 죽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다 죽인다. 한방에 골로 갈 수 있다. 2008120도노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