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재에 올라
디 오리지널 내부자들을 보고 나온 우리는 대학로를 가로질러 낙산재로 올라갔다. 집으로 가기에는 해가 좀 남아 있었다. 이왕 대학로까지 온 김에 낙산재에나 한번 가보자.
그 해 우리는 이곳 낙산재 밑에서 살았었다. 그 때 나는 성대 동네에서 붕어빵을 구워 팔았고, 옆지기는 도곡동에서 영어학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얻은 방은 지층이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있었다. 우리 부엌 창문 너머에는 숲 속에 돌로 지어진 별장 같은 집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별장에 김수환 추기경이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분위기가 그랬다. 밤이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2층 별장 거실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은은한 불빛. 거실에는 추기경이 책을 보고 있거나 묵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놓고 남은 시간을 다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별장
어쨌든 추기경이 머물고 있는 별장집과 우리 방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때는 막걸리가 밥이던 시절이었다. 밤에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들어올 때마다 불이 켜져 있는 별장을 보며 이렇게 나지막하게 말하곤 했다.
추기경님, 이쪽으로 오이소, 저하고 막걸리 한 잔 하입시더.
하하하, 좋지요.
낙산재 동네의 풍경
옛날 낙산재 중턱에 6층짜리 아파트가 두 동 있었다. 여느 아파트와 다른 점은 통로를 사이로 양옆에 아파트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복도를 보면 낮에도 컴컴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가게가 하나 있었고, 가게 마당에는 파라솔이 서너 개 있었고, 파라솔 밑 탁자에는 낮술을 마시는 주민들이 늘 있었다. 낙산재에는 또 이승만 대통령을 경호하던 경호원들이 살던 주택도 있다. 이화장 바로 위에 2층으로 지어진 주택이 횡대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지금도 있지 싶다. 그 당시로 보면 제법 잘 지어진 주택이었다.
낙산재 정상에 앉아
낙산재 정상을 경계로 대학로와 동대문이 나누어진다. 정상에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동대문으로 내려가고, 반대편 언덕길을 내려가면 대학로인 혜화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에 있는 성대가 보이고, 서울대학병원이 보이고, 종로가 보이고, 그리고 남산과 남산타워가 보인다.
옆지기에게 묻다
의자에 앉은 우리는 건너편의 동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을 해결하곤 했던 성대가 눈에 들어왔다. 성대 학생회관의 식당을 많이 이용했다. 1500원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당신, 뭐 보노?
저 건너편 봐요. 왜요?
아니.
발품을 제법 팔았던 낙산재다.
하나 물어보자?
옆지기가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볼 때, 내가 정상이가?
네.
확실하제?
네. 왜요?
그럼 됐다.
왜요?
나와 접촉했던 15명
그들은 왜 나를 비정상이라 생각할까?
설마요.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접촉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늘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어느 누구와도 토론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허리끈 탁 풀어놓고 토론을 좀 하자. 심지어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도 했다.
그랬지요?
그런데, 그들은 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손을 꼽아보니 15명 중에 10명은 내가 제시한 통일 프로젝트에 노코멘트를 했다. 이론과 논리로 따지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들이! 나는 그게 너무 궁금하다. 왜 그들은 내 메시지에 침묵을 했을까? 단 5명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극찬을 했다.
그럼 된 거예요.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갈라지는 게 아닐까요?
그래?
당신이 그랬잖아요, 독일도 쉽게 통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그래서 그럴까?
여당 안에서 혁신적 진보인사인 유승민 의원도 대북정책은 보수잖아요.
그렇지.
그 사람도 당신 통일 프로젝트는 아마 환영을 하지 않을 거예요?
안 하지. 그 사람의 대북정책도 새누리와 똑 같다.
바로 그거예요.
나 원 참.
당신의 진정성이 정말 통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있다.
뭔데요?
그 때 나에게 150명의 당원을 드릴 테니 대선후보를 좀 도와달라고 한 그 부탁을 내가 거절을 했다.
그랬지요.
그 때는 이미 탈당을 한 뒤고,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심사비를 주지 않아 내가 심사에서 제외가 됐다.
맞아요.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마음도 상해 있었고. 당의 몇몇 사람에 의해 선해진 그들을 보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진짜 치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안 뽑나? 어쨌든 나를 제외시켰다는 그 점이 내 마음을 좀 상하게 했다.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또 지금 마음에 걸린다. 당사자인 그 사람은 그 때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 분이 당신의 마음을 잘 모르잖아요.
내 마지막 꿈
당신도 알다시피, 내 꿈이 국회원이 아니잖아. 국회의원을 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
대체적으로 많은 편이지요.
내 꿈은, 한반도를 총 한 방 쏘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시키고 싶은 그 꿈뿐이다.
맞아요.
나 같은 사람, 이 정치판에 한 사람 정도 있어야 안 되나?
있어야 되어요, 반드시.
문디 새끼들!
하하하.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저 망할 정치판이!
기다려봅시다. 지금 당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4월을 한 번 지켜봅시다.
혁신에 혁자도 모르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가끔씩 이런 생각도 든다.
무슨?
내가, 진짜, 너무 앞 서 가나?
아니에요, 적기라고 봐요.
글체?
네.
정말 이해가 안 될 일이, 내가 점찍었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나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가지고 있고, 통일정책을 가지고 있다.
그 부분에서는 저도 사실 이해가 안 되어요.
아니, 연방제가 도대체 뭐고? 이 좁은 땅에. 한반도 대운하만큼 어리석은 통일정책이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해요.
내가 그 통일 프로젝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38선으로 전망대로 해매 다녔노?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설악산은 또 어마나 많이 갔노? 밑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맞아요.
내공이 없으면, 그런 설계도 아무나 못 만든다.
저도 인정을 해요.
겨우 대박이 하나 건졌네!
하하하.
나는 지금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당 백만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남들보다 한 발, 두 발 정도 앞서 가면 이런 대접을 받나? 길을 가는데 어떻게 횡대로 줄을 맞추어 걸어가야 된단 말인가? 앞에 가는 사람도 있고, 뒤에 처져 따라오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거 아니가? 정말 대한민국 정치권의 기상도는 파악이 안 된다.
뒷이야기-내 위로 누님과 형님, 내 밑으로 두 누이가 있다. 형님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이명박과 박근혜 신도들이다. 매제들까지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대도는 없고 소도만 있다. 늘 하는 이야기 끝에 나오는 단골메뉴가 노무현이 먹은 10억 원과 논두렁에 버린 1억짜리 시계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1억짜리 시계는 작년엔가 이미 사실관계가 끝났다. 그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불독 같이 생긴 임 뭐 그 검사가 국정원에서 언론에 흘린 것이었다고 기자들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한번 생각해보자, 10억과, 몇 조와, 몇 천억 원이, 게임이 된다고 생각하나? 나쁜 프레임이 그들을 그렇게 세뇌시켰다. 깨치지 않으면 영원히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부처가 바로 옆에 있어도 보지 못한다. 둘러보면, 이 땅에 예수와 부처가 많다. 당달봉사라 보지 못할 따름이다 그게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맞니껴? 201619해발120고지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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