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 법환포구를 찾기 시작한지가 벌써 삼 개월째다. 지난 3월부터 찾기 시작하면서 내 시선을 잡아끈 사람들은 이곳 마을의 해녀분들과 낚시꾼이다. 오늘도 그랬다. 오늘 법환포구의 기온은 17도 정도였다. 쌀쌀했다. 바닷물 속은 더 추웠을 것이다. 30여 명이 넘는 해녀분들은 날씨와 상관 없이 물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닷물 속의 해녀 할머니들을 보면서 열정과 습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저분들은 열정은 아니다. 습관일 것이다. 그렇다면 습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 삶과 일에서 올 것이다. 습관의 동력은 삶과 일이다. 날이 좋으면 당연히 바다에 나가야 한다. 몸이 아프지 않는 한 바다에 나간다.
저 낚시꾼은 고기를 잡으면 그 즉시 놓아준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시간과 인내를 하면서 잡은 물고기를 왜 놓아줄까?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낚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바닷물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 4시 20분 정도였다. 몸이 추웠다. 저분들은 얼마나 추울까? 30여 명 되는 해녀분들의 평균 나이는 70대다. 50대도 있고 60대도 있지만 대부분 70에서 80이 넘은 분들이 많다. 저 분들 중 한 분을 만나 이야를 나눈 적이 있다. 85세라고 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남편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계십니까?' 라고 물으니 그 때부터 할머니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제주도 말을 내 식으로 정리를 하면 이렇다. '나는 남원 사람이다. 우리 신랑은 동홍동 사람이고. 결혼을 했는데 ㅈ같은 놈팽이었다. 애 둘을 키우면서 나는 바다에서 일을 하고 그 쌍놈의 ㅈ같은 새끼는 기집질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아이까지 낳아 나한테 맡겼다. 애 다섯을 먹여 살리려고 저 바다에 청춘을 다 보냈다. 집도 두 채 지었고, 귤밭도 샀다.' '할아버지는 계세요?' '50 중반에 뒤져버렸어.' 처음부터 끝까지 육두문자였다. 나는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는 죽어라 일만 하는 하녀이자 머슴이었고, 할아버지는 연애질과 노름판에 빠져 지내며 호령호령하며 산 호로새끼였다. '할머니, 앞으로 바다에 나가시면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고 얕은 곳에서 일하세요.' '얕은 데는 존 게 없어. 깊은 데 가야 있어.''그래도 조심하셔야지요.''그 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아저씨는 걱정 마소.'
열정은 목표와 야망과 관계가 깊고, 습관은 삶과 일하고 관계가 깊다. 습관의 진짜 동력은 가족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날이 새면 망태를 메고 바다에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몸에 밴 분들이다. 가족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바다에 나가고, 애를 키우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채 폐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깊은 바닷물 속에서 소라를 잡고, 해삼을 잡고, 전복을 따는 것이다. 저 분들을 보면서 나는 브레이크를 잡은 채 부르릉 하고 시동을 걸곤 한다. 때가 되면 내 열정은 목표와 야망을 잡기 위해 엑설러레이트를 힘껏 밟고 그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 때까지 내 정신과 몸은 늙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현미밥 한 그릇을 먹고 하루 20여 Km를 걸으면서 나는 나를 다스려 나간다. 나는 늘 파이팅이다. 열정과 습관은 성공의 두 바퀴이다. 우리 인간이 끝까지 잡아야 할 동력이다. 생각해보면 열정도 무섭지만, 습관도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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