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
2020년 12월 30일 눈이 내리는 고근산 그 길의 비탈길에서 순간 콰당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졌다. 넘어질 때 아차, 하며 오른손으로 꽃이 핀 동백나무 줄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른쪽 엉덩이와 왼쪽무릎을 콰당, 내리치고 찧을 때 나는 아, 이제 골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한의와 재활의학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소변통을 머리 위에 두고서. 허리가 아파 엎드려 세수를 못 했다. 엑스레이를 두 번 찍었지만 다리와 척추는 부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튼튼하다고 했다. 보고 듣고 읽은 게 있어 물리치료 대신 나는 걷기로 결심했다. 아픈 허리를 한 채 7코스와 6코스를 걸었다. 척추와 다리뼈가 부러지지 않고 그렇게 결론이 난 것은 순전히 지난 1년 동안의 내 걷기가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내 걷기는 시작되었다.
아직도 내 허리는 옛날의 무결점의 허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핑계로 시랑꼬랑 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일어서야 하고, 그리고 용감하게 걸어야 한다. 많이 걷고 있다. 계산을 해보니 4,100Km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제 5일장에 따라간 집사람이 나를 따라오면서 기진맥진했다.
"아이고, 오서방요, 제발 좀 천천히 갑시다. 나, 죽습니다."
"안 빠르다. 내가 늘 걷는 그 페이스다."
"당신의 페이스가 평균이 아니니까 그렇지요."
앎의 궁극
고향에 있는 후배들이 만나 차를 마시면서 내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소식이 너무 없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들을 대신해 후배 하나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안 받았다. 나는 가야 할 길이 있다. 여기서 쉬거나 방향을 틀 수는 없다. 후배들아,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나에게는 OKR이 있다. 내 목표를 잡으면 그 때 고향을 찾을 것이다.
그들 중에 한 후배가 자신의 SNS에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올린 글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화가 났다. 어떻게 몸을 다스렸기에 그 지경까지 왔나? 그 후배는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이 약해져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글을 읽는 목적은 뭐냐? 앎의 궁극은 실천이다. 그래서 카톡으로 내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지금 이곳 제주도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작년부터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4, 000Km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음식과 운동이다. 오늘부터 고기는 먹지 말고 현미와 채식을 해라. 그리고는 운동을 해라. 그러자 후배가 음식과 운동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형님, 지금 제주도에 계십니까?"
다시 한 번 화가 났다. 이 친구들은 SNS도 안 하나?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내 근황 정도는 읽을 수 있는데? 참 답답했다.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이며, 빛처럼 변화무쌍하게 변해가는 세상의 뉴스를 이 후배들은 어떻게 얻고 있나?
어제 7코스 강정에서 월령포구까지 걸으면서 집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닮은점은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욕심이 없다. 대신 나는 야망은 크다. 그 야망을 잡기 위해 이렇게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계속 걷고 있다. 이미 4천 Km를 넘어서고 있다. 이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내가 설계한 그 목표를 잡기 위해서다. 그 정상에서 10년 정도만 더 살다 가고 싶다. 그 정도면 내가 설계한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이루고 가고 싶다. 당신은 나보다 10년 더 살다 오너라."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아무도 당신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하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합시다."
"그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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